이미지 크게보기 예수 역으로 발탁된 직후인 22일(현지시간) 미국 NAACP 이미지 어워드에 정장을 입고 등장한 신시아 이리보. AP 연합뉴스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신시아 이리보 캐스팅 논란

7년전 흑인가수 존레전드 이후
두번째 흑인… 女 배역은‘최초’

캐스팅 소식에 머스크 등 반발
“기독교의 공격이자 신앙 모욕”

라틴계 백설공주 등 새 시도에
원작 훼손·역사왜곡 잇단 논란
일각 “정치해석 배격·작품집중”

흑인 여배우 신시아 이리보가 유명 뮤지컬에서 예수 역을 맡으며 다시금 ‘블랙 워싱’(black washing·의도적으로 흑인 배우를 내세우는 캐스팅) 논란에 불이 붙은 가운데 이리보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리보는 오는 8월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볼에서 공개되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맡는다.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막을 올린 이후 주로 백인 남성이 이 역을 책임졌으며 지난 2018년 흑인 가수 존 레전드가 예수를 연기한 적이 있지만, ‘흑인 여성’이 예수 역을 맡는 건 이리보가 처음이다.

보도 직후 SNS를 통해 “이번 여름은 조금 바쁠 것 같다. 너무 기대된다”는 소감을 전했던 이리보는 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NAACP(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 이미지 어워드에 참석했다. 그동안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았던 이리보는 검은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 중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또한 이 자리에는 그의 동성 연인으로 알려진 흑인 배우 리나 웨이스가 동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리보가 예수 역을 맡은 직후 즉각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테슬라 CEO이자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는 X를 통해 “다른 종교에 이런 짓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호주 정치인 랄프 바베트도 SNS를 통해 “이것은 창의적인 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며, 우리의 신앙과 전통에 대한 의도적인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이리보의 예수 캐스팅에 대해 미국 내 논란이 뜨거운 이유는 정치적인 이슈와 무관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인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운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뜻하는 ‘DEI’ 정책을 배격한다. 21일에는 바이든 정부 시절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합참의장으로 발탁됐던 찰스 브라운이 경질됐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머스크 CEO가 흑인 여배우 신시아 이리보를 둘러싼 논쟁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하면서 이번 논란이 트럼프와 머스크가 주도하는 ‘반(反)DEI’ 정책에 힘을 싣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나친 정치적 해석을 배격하고, 작품 자체에 집중해서 이번 사태를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예수=흑인 여성’이라는 설정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앞서 디즈니는 ‘흑인 인어공주’ ‘라틴계 백설공주’를 만들고, 넷플릭스는 ‘흑인 클레오파트라’를 내세웠다가 원작 훼손 및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소위 PC주의(정치적 올바름)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의도적으로 원작 속 캐릭터를 변화시키는 것이 오히려 작품의 본질에 해를 끼치고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반발이 이어졌다. 실제로 이런 작품들이 흥행에 크게 실패하자 디즈니, 넷플릭스 등이 다양성 책임자들을 연이어 경질한 바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흑인 예수는) 파격적인 캐스팅이기 때문에 반발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정 작품에 대해 재해석을 시도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제시하는 것은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더 중요한 건 만듦새다.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그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흑인 예수’ 논란은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리보는 3월 초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뮤지컬 영화 ‘위키드’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그가 ‘위키드’의 녹색 마녀로 캐스팅될 때에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만약 수상까지 한다면 PC주의와 반DEI 사이에서 또 한 번 논란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이리보는 또 5월에 열리는 뮤지컬 시상식인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의 사회자로도 낙점된 상태라 그가 등장하는 곳마다 이 논쟁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 평론가는 “파격적인 시도로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할 때는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고민해야 한다. 현재 흘러나오는 잡음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작품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