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고립주의’ 심화

국제기구 예산지원 재검토 지시
“유네스코 등 반미적 성향 보여
나라별 지원액 차이도 불공평”
향후 WTO·나토 탈퇴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미 정부에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서 탈퇴하라고 명령했다. 전날 해외 원조 전담 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에 대해 사실상 폐쇄 결정을 내린 것에 이어 돈 드는 국제원조·구호기구에서 발을 빼고 나선 것이다. 향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핵심 국제기구 추가 탈퇴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일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집무실에서 미국이 유엔 인권이사회와 UNRWA에서 탈퇴하고, 유네스코 참여 문제를 재검토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인 2018년에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하고 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한 바 있는데, 이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내린 재가입 및 지원 재개 결정을 재차 뒤집은 것이다. 특히 이번 행정명령에는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예산 지원에 대해 포괄적으로 재검토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나는 항상 유엔이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느꼈으나 현재는 이런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솔직히 그것(유엔)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유네스코 등 다른 국제기구에 대해서도 “반미(反美)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유엔의 예산 지원이 나라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심대하게 미국에 불공평하다”며 추가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원조·구호기구와의 관계를 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정부 내 해외 원조 전담 기구인 국제개발처를 국무부 산하 조직으로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해당 결정을 알리면서 “전적으로 비협조적이며 국익에서 자유롭다는 식의 태도”라며 “많은 경우 USAID는 우리가 우리의 국가 전략에 따라 하는 일에 반(反)한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지난달 20일에는 취임 행사 도중 지지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곧바로 백악관 집무실로 이동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다른 핵심 국제기구에 대한 탈퇴 명령을 추가로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나 나토에서 탈퇴하는 결정까지 내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엔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사무총장 대변인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유엔의 효율과 혁신을 늘리는 수많은 개혁을 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andre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