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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명과 변명’ 펴낸 안희제

대입·연애 실패한 주인공 통해
주류만 좇는 청년남성에 메시지

‘이대남’(20대 남성) 현상부터 현재의 백골단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사는 청년 남성들의 사회적 표상은 대체로 이렇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페미니즘에 반대하며 코인 투자에만 열을 올리는 그런 자들. 언론과 SNS에서 그리는 2030 남성들에게 연애와 군대, 취업에서 낙오되는 두려움은 없다. 문화인류학자인 안희제(사진)는 이 남성들에게 서사를 부여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에겐 ‘증명’이 되기도 하고 ‘변명’이 되기도 하며 그 변명이 곧 또 다른 증명이 되기도 하는 이야기 말이다.

마치 한국 남성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할 것만 같지만 안 작가의 이번 신간의 중심에는 오직 한 인물, 그의 친구인 우진(가명)만이 있다. 우진은 3수를 해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했지만 방황하며 군 입대를 하고 두 번의 수능을 더 치른 끝에 대학을 포기했다. 대학을 자퇴한 후에는 주식 투자에 관심이 생겨 매진하고 있다. 면면을 보면 주변의 2030 남성과의 공통점이 하나쯤은 있는 우진의 ‘폭탄 발언’에서 책은 출발한다. 최근 문화일보에서 만난 안 작가는 “원래는 질환을 갖고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이 사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며 “그러던 중 우진의 ‘자살 계획’을 듣고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의 다른 우진이들을 상상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우진은 1년 전 자살을 계획했다. 코딩을 공부해 자신이 구상 중인 프로그램을 특정 날짜까지 만들지 못한다면 거기서 생을 포기하겠다는 그의 결심에 안 작가는 책으로 답했다. 자신의 크론병을 바탕으로 저서 ‘난치의 상상력’을, 아이돌 덕질 경험을 ‘망설이는 사랑’으로 풀어냈던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주변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다른 우진이들에게 책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우진이 폭탄 발언을 하기까지는 다양한 탈락의 조각들이 있다. 안 작가가 ‘K-타임라인’이라고 부르는 ‘학교-수능-연애-군대-취업-결혼’의 과정을 고집스럽게 좇은 우리 사회의 우진들은 연애의 기회를 놓쳐 모태솔로인 자신을 실패했다고 여기고 지망했던 대학을 가지 못하자 주식 수익률만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탈락의 조각들이 쌓이는 과정에서 그간 사회적으로 묘사된 청년 남성의 모습도 이해해볼 수 있다. 안 작가는 “우진이 자기 자신에 대한 비인격화에서 출발해 여성에 대한 비인격화로 나아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며 “무엇이 청년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가치 없다고 느끼게 하는지를 파고들어야 이 사람들이 다른 소수자들을 혐오하게 되는 그 과정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짚었다.

우진이 코딩에 성공했는지,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는 안 작가가 우진과 한 약속이다. 그 덕분에 이야기는 확장되고 보편화된다. 이제는 허상에 가까운 K-타임라인에서 낙오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로.

“과거에나 가능했던 남성의 삶과 동일시하는 것을 끊어내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 조각들을 돌아봤으면 해요. 나를 패배시키고 탈락시키고 변명하게 만들었던 그 조각들이요.”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