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일(한국시간) 자신의 104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세상을 떠난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켈레티 아그네스가 생전 자신의 모습을 담은 책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 뉴시스

■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헝가리 켈레티 103세로 별세

가족은 아우슈비츠서 사망
28세 국대뒤 나치 박해받아
31세때 헬싱키대회서 첫 금
“비극 극복한 체조의 영웅”

“고통을 힘으로, 믿음을 놀라운 업적과 승리로 바꾸는 방법을 아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일 밤(한국시간) 헝가리의 체조선수였던 켈레티 아그네스의 사망을 알렸다. 헝가리올림픽위원회(HOC)에 따르면 켈레티는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심부전과 호흡곤란 증세로 부다페스트 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켈레티는 오는 9일에 자신의 104번째 생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1921년생인 켈레티는 금메달 5개를 포함해 올림픽에서만 총 10개의 메달(금5 은3 동2)을 목에 걸어 헝가리 역사상 두 번째로 올림픽 무대에서 성공적인 성적을 거둔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체조선수로서는 황혼기인 31세의 늦은 나이에 출전한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4년 뒤 멜버른 대회에서는 무려 4개를 추가했다. 올림픽 역사상 체조 종목의 최고령 여성 금메달리스트다. 켈레티는 사망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헝가리와 이스라엘은 물론, 체조 등 국제 스포츠계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현역 체조선수 시절의 켈레티. 헝가리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켈레티가 더욱 주목을 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수 많은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 피해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영국 매체 BBC는 켈레티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켈레티는 16세 때 처음 운동선수의 길을 걸었고 28세에 국가대표가 됐다. 이듬해 자국 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으나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모든 스포츠 활동이 금지됐다. 결국 위조된 서류를 사용해 신분을 속여 나치 수용소로의 추방을 피했으나 아버지 등 많은 가족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때문에 켈레티는 헝가리 역사상 손에 꼽힐 만큼 성공적인 성과를 낸 운동선수지만 멜버른올림픽 이후 이스라엘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 체조코치로 일하며 결혼해 가족을 꾸렸다. 켈레티가 헝가리로 돌아온 것은 약 60년 뒤인 2015년이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켈레티는 인간 정신의 힘과 결단력의 힘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고 애도했다. 독일 출신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켈레티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비극을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용기의 힘을 보여줬다. 정말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라며 슬퍼했다.

오해원 기자 ohw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