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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병권’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때의 ‘병권’은 ‘兵權’이 아닌 ‘甁權’이니 술을 따르고 건배 제의를 하는 등 술자리를 지배하겠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고깃집에 가게 되면 ‘판권’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때의 ‘판권’은 책에 대한 권한이 아니라 불판에 대한 권한이니 고기 굽는 것은 자신이 맡겠다는 의미이다. 병권과 판권이 잘 발휘되면 분위기가 좋아지고 판권이 제대로 작동하면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병권을 쥐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하니 ‘술부심’이 기본이고 판권을 쥐려면 고기를 잘 구워야 하니 ‘고기부심’ 또한 기본이다. ‘부심’은 ‘자부심(自負心)’을 줄인 말이니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으나 현실에서는 종종 쓰인다. 국수 종류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이의 ‘면부심’이나 매운 것을 잘 먹는다고 자랑하는 ‘맵부심’도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 약간의 허세와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미되어 있는 말이니 반길 만한 것은 아니다.

병권을 쥐고 시종일관 폭탄주를 돌리는 이가 있어 이유를 물으니 자신의 전공이 ‘섞는과’여서 그렇다 말한다. 이 말을 듣고는 판권을 쥔 친구는 자신의 전공이 ‘굽는과’라고 한술 더 뜬다. 앞의 친구는 화학과이고 뒤의 친구는 한때 ‘굶는과’라고도 불렸던 ‘국문과’이니 말이 되기도 하는 말장난이니 웃고 넘어가면 된다.

섞는과의 술부심은 모두의 건강을 해치니 권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굽는과의 고기부심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약속하니 고맙다. 이뿐만이 아니다. 굶는과라고 불리던 시절, 대학에 다니던 이가 노벨 문학상을 받아 모두의 마음속을 든든하게 채워주었으니 이들의 ‘글부심’도 인정해 줄 만하다. 냉면 마니아의 면부심은 냉면값을 천정부지로 오르게 하니 반갑지 않고 맵부심은 부려봤자 자신만 손해다. 하나 한강 작가 덕에 굽는과의 부심은 무죄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