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경제부 차장

단 하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원(One)’에 엘리트를 뜻하는 라틴어 ‘펜타스(Pentas)’를 조합했다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아파트. 기억하기에 다소 난해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이 재건축 아파트가 연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유명해진 이유는 무려 20억 원의 시세 차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전용 84㎡ 분양가가 22억∼23억 원에 달하지만, 강남 집값 시세가 워낙 높다 보니 주변 아파트 대비 20억 원 정도 저렴(?)하다고 한다. ‘로또 1등’보다 더 많은 금액을 앉은 자리에서 벌 수 있다니 청약 경쟁률은 무려 평균 527.3 대 1을 기록했고, 만점 통장이 대거 쏟아졌다. 84점 만점은 15년 이상 무주택 기간(32점), 15년 이상 가입 기간(17점), 본인을 제외한 6명의 부양가족(35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무주택자들 사이에선 당장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장기간 집 없이 지낸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자는 청약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우선, 청약 당첨 자체가 일종의 혜택을 부여받는 셈인데 분양가가 20억 원이 넘어가는 가구에 이 같은 혜택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강남에서 재산세나 취득세 부담 없이 고가 전세 주택에 거주하다가 청약 당첨 기회까지 갖게 될 수도 있는데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부양가족 수 규정이나 배점 비중이 현세대의 거주 형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35.5%에 이르고 주택당 평균 거주인 수는 2.7명으로 5년 전 대비 0.3명 줄었다. 2000년 44.5%에 달하던 4인 이상 가구 비중도 지난해 16.8%까지 떨어졌다.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 아닌 이상 인기 지역 당첨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 청약 제도 실상과 대비된다. 이런 가운데 만점인 15년 이상 보유자는 321만 명까지 치솟으며 부양가족 점수의 중요성이 커졌다.

7명의 가족이 15년 이상 무주택으로 살다 청약에 당첨된 사례에 ‘위장전입’ 의혹이 일고 당국이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다. 로또 중의 로또라는 ‘무순위 청약’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강남보다는 기대 수익이 덜하지만, ‘10억 로또’로 불린 경기 화성 롯데캐슬의 지난달 말 무순위 청약에는 1가구 모집에 294만 명이 몰렸다. 무순위 청약이란 청약이 완료된 후 계약자 변심이나 부적격 사유로 당첨이 취소돼 나오는 것인데, 청약 가점과 관계없이 청약이 가능하다 보니 너도나도 신청에 나서고 있다. ‘로또 청약’은 가뜩이나 꿈틀대고 있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부추기며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요원하게 한다. 서울에서는 생애 첫 내 집 마련에 나서는 무주택자가 2년 2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패닉 바잉’ 조짐마저 엿보인다. 정부는 지난주 ‘8·8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놓으며 집값 잡기에 착수했다. 이번 기회에 시대 변화를 담지 못한 채 꼼수·편법을 초래하는 청약 제도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 더불어 주변 시세와의 지나친 격차 탓에 ‘로또 청약’ 광풍을 몰고 온 ‘분양가 상한제’ 개편 필요성에 대해서도 숙고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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