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광고판 없이 휑한 파리의 거리… 겉치장 벗고 내실 챙긴 ‘프렌치 시크’

문화일보는 2024 올림픽 기간 파리의 다양한 모습을 전하는 박은하 전 주영국대사의 파리올림픽 리포트를 게재합니다.

‘세련이란 건 치장이 아니라 내면이야.’ 이렇게 파리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로 오는 길에 받은 파리올림픽의 첫인상이다. 샤를 드골 공항에도 파리로 들어오는 도로변에도 아무것도 없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밑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된 것처럼 파리의 한적함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든다.

올림픽 공식 항공사인 에어프랑스에도 올림픽을 알리는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기내엔터테인먼트에서 ‘파리 2024’ 부분에 들어가 보니 보물 창고처럼 올림픽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올림픽의 역사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써 온 위대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인류의 자유와 평등, 화합을 위한 올림픽의 긴 여정에 파리는 어떠한 이정표를 세울 것인지 보는 이가 스스로 알아차리게끔 한다. 아주 세련된 프로파간다이다.

올림픽의 역사는 프로파간다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치 독일의 베를린올림픽이 그러했고 전쟁의 상처를 훈장으로 둔갑시킨 도쿄올림픽이 그러했다. 냉전 기간에 열린 로스앤젤레스올림픽과 모스크바올림픽은 체제 선전장이기도 했다. 베이징올림픽은 중화사상을 전 세계의 무대에 올린 플랫폼이었다. 반면, 파리는 대놓고 힘을 과시하는 대신 은연중에 멋져 보이는 그런 세련미가 넘친다.

공항엔 올림픽 홍보 간판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등록대가 설치돼 있다. 여름휴가 기간에 파리를 떠나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는 교사·간호사·운전기사들이 손님들을 맞는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 어디에도 올림픽 깃발이나 광고판을 보기 힘들다. 거리 깃발이나 현수막 광고판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프랑스 정부나 파리시 정부의 무관심 때문일까 여겨지기도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탄소중립을 표방한 올림픽 실천이 바로 핵심이다. 행사 후 버릴 광고물 제작을 아예 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의 아름다운 빛의 향연과 콩코르드 광장의 분수 쇼는 예술이지만 깃발과 광고판은 쓰레기를 양산한다. 이를 구분하는 것이 파리의 세련됨이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센강 개막식과 유서 깊은 문화 유적지에서 열리는 경기들이 기대되는 것은 곳곳에 배어 있는 내면의 세련됨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말대로 “세련된 선전의 기술은 당신이 그것이 선전임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외교부 개발협력국장, 공공외교대사, 주영국대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