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남 밀양시 내이동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지난해 6월 민원인의 폭언·폭행 등 민폭(민원폭력)에 대비한 모의훈련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 (5) 프로민원꾼의 공무원 괴롭히기 공식

자신 요구대로 관철안되면
상급기관에 계속해서 제기
그래도 안되면 고소·고발로

답변 꼬투리 잡아 문제 삼고
담당자 전화번호 등 유포도
“민원 아닌 공무원에 화풀이”

40대 남성 A 씨는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2000건이 넘는 ‘민폭’(민원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그는 서울시의 전자민원 접수창구인 ‘서울시 응답소’와 서울의 한 구청에 ‘불법주차 단속 요원 채용 비리가 있다’는 민원을 반복 제기했다. 구청에서는 관련자 조사 등 내부 확인을 거쳐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구청은 A 씨의 계속되는 민원에 답변을 이어가다가 결국 내부 결재를 거쳐 민원 종결 처리를 했다. 서울시 감사팀에서도 구청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나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A 씨는 새로운 민원 루트를 찾았다. △정보공개 청구 △행정심판 청구 △수사 의뢰 및 구청 직원 고소 등에 나섰다. 이 같은 행정 절차가 제기되면 구청이나 해당 직원은 매번 민원 대응을 하고 조사를 받아야 돼 그 자체로 공무원은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전국 민원실 공무원들이 ‘민원 공식’을 활용해 민폭을 퍼붓는 ‘프로 민원꾼’에 신음하고 있다. 중복·반복 민원은 이들의 기본 옵션이다. 사실상 같은 내용의 민원을 끝없이 반복해서 제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효과가 없으면 작정하고 공무원 괴롭히기에 나선다. 대통령실 등 상급기관에 ‘고공 민원’을 제기하고, 특정 직원을 꼭 집어 소송에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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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관가에 따르면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민원 담당 공무원의 피를 말리는 언어폭력으로 공무원을 괴롭히는 사례가 많다. 세종시의 중앙 부처 공무원인 B 씨는 최근 민원 처리 결과에 대해 불만을 가진 민원인과 통화를 하게 됐다. 그는 관련 규정에 대해 설명하고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했다. 그러자 민원인은 고압적이고 조롱 섞인 말투로 ‘당신이 법을 전공했느냐’ ‘법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규정을 담당하고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아울러 ‘이러고 세금을 따박따박 월급으로 받느냐’는 식의 인신공격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 같은 ‘월급 세금 공격’은 악성 민원인의 단골 레퍼토리라고 한다.

B 씨는 민원인의 발언을 듣고 있다가 “녹취할 수 있다”고 하자, 민원인은 “인신공격의 뜻이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리냐”고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명확한 신체 폭력이나 욕설 등의 경우 곧바로 경찰에 신고라도 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은 크게 문제 삼지 못하는 점을 악용한 악성 민원이다. B 씨는 “도대체 민원을 하겠다는 건지, 공무원과 싸워서 기분을 풀겠다는 건지 모르는 상황이 자주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꼬리 물기 민원’도 민원 담당 공무원을 괴롭히는 대표적 민원 공식이다. 민원에 대해 답변을 하면, 꼬투리를 잡아 반복·중복 민원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길게 통화 등을 하며 문제 삼을 만한 공무원의 말투, 말실수, 정확하지 않은 안내 등을 포착해 문제 삼는 방식이다. 실제 서울에 사는 C 씨는 수개월 동안 총 38개 기관에 1만4000여 건의 민원을 제기했는데, 이 중에는 민원 담당 공무원의 답변을 문제 삼아 재차 민원을 제기하는 꼬리물기 민원도 다수 포함됐다.

아울러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가 걸린 경우엔 담당 공무원의 휴대전화 번호, 사무실 내선 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수집한 뒤 커뮤니티 등에 이를 공지해 수십 명이 전화·문자 폭탄을 퍼붓는 식의 악질적인 방식도 있다. 한 중앙 부처 공무원은 “어떻게 알았는지 개인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다 공유돼 있더라”며 “상상을 초월한 방식으로 공무원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회의원실 등에 민원을 해 의원실에서 해당 공무원에게 전화가 가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중앙부처 공무원은 “의원실 등 가장 곤란할 상대에게서 반복해서 민원 전화를 받는 공무원이 다수 있다”고 말했다.

손기은·전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