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 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상습·중복·상급기관에 제기
담당자는 소명하느라 ‘멘붕’

가족·친지 명의를 총동원해 신고포상금을 수령하는 ‘세파라치’ A 씨는 일부 규정 개정 등으로 포상금 수령액이 줄자 지난해부터 작정하고 ‘공무원 괴롭히기’에 나섰다. 공무원의 설명에 욕설이나 트림을 하며 대화를 의도적으로 끊었다. 이에 공무원이 “이러시면 유선 안내가 어렵다”고 하자, A 씨는 ‘민원 공식’에 따라 민폭(민원폭탄) 투하에 나섰다. 그는 홈페이지 기관장과의 대화, 국민권익위원회 등으로 전선을 넓혀 ‘중복 민원’을 제기했고, 대통령실·국무총리실 등에 ‘고공 민원’도 냈다. 이 공무원은 “높은 곳에서 민원 소명을 요구하면 공무원은 종일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밖에 없다”며 “악성 민원 소명하느라 하루가 다 간다”고 하소연했다.

‘일반 민원→중복·반복 민원→상급 기관 고공 민원→고소·고발’ 등의 민원 공식을 밟는 ‘프로 민원꾼’의 민폭에 공무원 사회가 신음하고 있다.

22일 관가에 따르면 해당 부처 홈페이지 전자민원·공무원 통화 등을 하다가 장관과의 대화·총리실·대통령실·국회의원실 등에 마구잡이로 같은 내용의 민원을 제기하는 ‘프로 민원꾼’들이 많다. 익숙한 공식이지만 담당 공무원은 매번 ‘멘붕’ 상태에 빠진다. 중복 민원 여부에 상관없이 민원 제기에 따른 소명이나 답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해당 공무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집단에 뿌려 ‘전화 폭탄’을 맞게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장시간의 통화를 유도한 후 “그 답변 틀렸다. 소명하라” 식의 ‘꼬리물기’ 민원 △“행정고시 출신 맞느냐. 이러고 세금 받느냐”는 등의 폭언도 공무원을 괴롭히는 악성 민원이다.

민원인으로부터 억지 고소·고발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2018년부터 올 4월까지 ‘근로감독관’이 민원인에게 고소·고발당한 529건 가운데 97%인 511건이 각하되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손기은·전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