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사무실 방화’ 7명 사망
불지르고 현장서 숨진 용의자
“같이 죽자” 소리치자마자 화염
경찰 “인화물질은 휘발유” 추정
등산용 칼 수거하고 감식 의뢰

변호사협회 “재발 방지 대책을”

이미지 크게보기참혹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법원 뒤 건물에서 방화 추정 화재가 발생, 7명이 숨진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반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대구 = 박천학·곽시열 기자

9일 대구 빌딩 방화 참사로 숨진 사망자 7명 가운데 2명의 신체에서 자상 흔적과 출혈이 발견돼 용의자가 방화와 함께 흉기를 휘둘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망자는 용의자와 변호사 1명, 사무장 2명, 직원 3명 등 모두 7명이다. 자상 흔적은 변호사와 사무장 1명에게서 발견됐다. 경찰은 용의자가 뿌린 인화물질을 휘발유로 추정하고 정밀 분석에 나섰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빌딩에서 발생한 방화 위치는 지하 1층, 지상 7층 가운데 2층 203호 사무실이며 사망자는 모두 이곳에서 발견됐다. 이 사무실 규모는 약 49.5㎡(약 15평)다. 경찰은 현장 검안에서 숨진 변호사는 등 부위 1곳, 사무장은 등과 허리 등 3곳에서 흉기에 찔린 흔적과 출혈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현장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등산용 다용도 칼을 수거하고 용의자가 사용한 것인지 감식에 나섰다.

이미지 크게보기

경찰은 용의자가 방화 당시 흉기를 휘둘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상처 규모와 원인을 밝히기로 했다. 또 경찰은 용의자 자택을 수색해 확보한 인화물질과 현장 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용의자가 사무실에 휘발유를 뿌린 것으로 보고 한국석유관리원 등에 정확한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방화 당시 사무실에 있던 직원 중 사무장 1명만 유일하게 생존했다. 이 사무장은 창문으로 긴급 대피했다. 당시 용의자는 “너 때문에 내가 졌다. 같이 죽자”고 소리치며 인화물질을 뿌린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가 사무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냈는지 여부는 확인이 안 된다”며 “인화물질이 뿌려진 뒤 삽시간에 불길과 화염이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시신 전반이 불에 탄 채 발견됐다. 해당 사무실은 입구가 1개이며 밀폐된 구조여서 화염이나 연기 배출이 어려운 점도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게 된 이유라고 소방당국은 설명했다. 사망자 중 변호사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한양대 법대 출신이다. 사법연수원 29기로 곧바로 개업해 파산사건을 주로 맡았으며 203호 사무실에서 A 변호사와 함께 일했다.

용의자는 재개발 관련 민사소송의 상대방 의뢰인 변호사인 A 변호사를 겨냥해 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 변호사는 재판으로 출장 중이어서 화를 면했다. 사망자들이 안치된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숨진 변호사의 고교 동기 B 씨는 “친구는 활동적인 성격에 늘 상대방을 배려했다”며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어 너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소송을 위해 빌딩과 가까운 아파트에 4년 전쯤 월세로 전입해 머물러왔으며 평소 이웃과의 교류는 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 사건과 관련, 변호사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용의자는 9일 오전 10시 55분쯤 불을 냈다. 용의자 포함 7명이 숨지고 50명이 연기 흡입 등으로 부상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