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가 지난 17일 미국 워싱턴DC K스트리트에 위치한 KAGC 사무실에서 한·미 관계 현황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 현안 인터뷰 - ‘입양인시민권법안’ 이끈 한인유권자연대 김동석 대표

美 양부모 이혼·파양 등으로
시민권 없던 한인에 희망 생겨
상원 조율 관건…韓도 책임을
다음 목표는 인종혐오 방지법

유력후보 對美정책 묻는 등
美정치권도 韓대선 예의주시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동맹 훼손 걱정은 안하지만
한일·한미일 협력강화 기대감

워싱턴 = 글·사진 김남석 특파원

“다음 정권에서 한국 정치권은 초당적인 외교·안보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야 의원들이 같은 미국 의원을 만나 동일한 이슈에 대해 완전히 정반대 얘기를 하면 우리 같은 한인들이 미 정치권에 어떻게 한·미 관계를 강조할 수 있겠습니까.” 1993년 이후 30년간 미 의회를 상대로 한인 유권자 운동을 주도해 온 김동석(64)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3·9 대선 결과를 “미 정치권도 매우 긴장하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이제 한국은 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가 됐기 때문으로, 미 의회 인사들이 ‘혹시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 2명이 한·미 관계 등과 관련해 내놓은 자료나 기사가 있으면 달라’고 청해 온다는 것. 김 대표는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던 밥 메넨데스(민주·뉴저지) 상원 외교위원장이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고 협력해야 하는 것을 미국이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한국이 인권이나 민주주의, 환경 등에 대해서는 중국에 할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늘 묻고 따진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또 김 대표는 “미 정치권에서는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이란·북한 등 적성국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우리의 상상 이상”이라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당시 미·북 정상회담의 후유증도 크다”고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새겨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세계 정치의 중심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워싱턴DC K스트리트에 자리잡은 KAGC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KAGC가 2007년 미 하원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이후 지난 4일 또다시 이뤄낸 ‘입양인시민권 법안(Adoptee Citizenship Act)’ 하원 통과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이 법안은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한인 1만9000여 명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입양인시민권 법안이 4번째 발의 만에 하원을 통과했다.

“하원 군사위원장인 애덤 스미스(민주·워싱턴) 의원이 발의한 게 4번째고 앞서 2009년 다이앤 왓슨(민주·캘리포니아)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까지 더하면 5번째다. 기적 같은 일이다. 입양인시민권 법안이 ‘미국경쟁력강화법안’에 첨부돼 통과됐는데 전혀 예상도, 기대도 하지 못했다. 앞서 낸시 펠로시(민주·캘리포니아) 의장이 미국경쟁력강화법안 통과를 공언하자 의원 435명 모두 자신들과 핵심 이해관계가 있는 법안을 첨부 신청했고, 그중 200개 정도가 첨부됐다. 그런데 스미스 의원이 말없이 이 법안을 첨부한 거다. 그만큼 이 법안에 대한 진정성과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스미스 의원이 이 법안을 첨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서명에 참여한 의원이 공화당 32명, 민주당 31명으로 균형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우리 KAGC도 철저하게 초당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략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상원 통과가 남았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솔직히 반반이다. 상원에도 이미 통과된 게 있는데 하원에서 통과한 법안과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조정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첨부된 200개 법안 역시 조정하게 된다. 앞으로 이 조정 과정에 영향력 있는 상원의원들을 찾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상원에도 로이 블런트(공화·미주리)·마지 히로노(민주·하와이) 의원이 이 법안을 발의해 11명이 서명에 참여한 상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5월 전에 미국경쟁력강화법안 처리를 공언한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숨죽이면서 의원들을 최대한 설득할 방침이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 미국으로 보내졌던 입양인들의 시민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미국에 살고 있는 250만 명 한인은 물론 한국 정부의 시대적 책임이자 예의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기업으로 평가받는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도 이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입양인시민권 법안이 해결되면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아시아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후발 이민자인 아시아계가 확 커지다 보니 기존 소수계층이나 비주류들의 눈총을 받게 됐다.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혐오 범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계 시민단체 중에서 워싱턴DC의 연방 의회를 상대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단체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래서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혐오 같은 것들을 방지하고 미 정치권이 이런 이슈에 늘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우리의 주요 활동목표다. 한·미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 살면서 세금을 내고 참정권을 갖는 유권자의 위치에서 한인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고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종전선언 등의 내용이 포함된 한반도평화법안도 의회에 발의된 상태다.

“중요한 법안이지만 법안 통과 가능성이 희박해 매우 안타깝다. 워싱턴 정치가 여야로 나뉘어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지만, 외교·안보와 관련해서는 변함없이 초당적이다.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미국의 적성국에 대한 의회의 불신과 반감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트럼프 전 행정부 당시 미·북 정상회담의 후유증도 크다. 이 법안 서명에 참여한 의원을 보면 앤디 빅스(공화·애리조나) 의원을 제외하고는 33명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의회 내 반대 여론을 확대하고 결집시킨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비판도 있다. 영 김(공화·캘리포니아) 의원은 불과 2주 만에 일방적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공동서한에 35명의 서명을 받아 국무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평화 문제를 가지고 한인사회가 찬반으로 갈라져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인 및 아시아계의 권익을 위해 의회를 드나드는 KAGC는 이로 인해 곤욕스러운 상황이다. 대북 문제는 쉽지 않은 이슈이기 때문에 인도주의 지원이나 이산가족 문제 등 가능성 있는 일부터 쪼개서 추진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다. 한반도평화법안은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등 무겁고 정치적인 내용까지 모든 사안을 한 법안에 집결시켰는데, 의회 전문가들은 이해하기 힘든 방식이다.”

―오는 3월 한국 대선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어떤가.

“한국이 매우 중요한 나라가 됐기 때문에 미 정치권도 한국의 권력교체에 대해 매우 긴장하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행정부 쪽도 보면 어떻게든 한국과의 관계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한국 정부가 늘 종전선언을 얘기해도 받아 주는 등 얼마 안 남은 현 정부 임기를 잘 넘기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물론 미국도 이제는 한국에 어느 정부가 들어와도 한·미 관계가 크게 훼손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을 택하라는 요구도 하지 않는다. 다만 차기 정부가 민주주의나 인권 등 핵심 가치를 미국과 공유하고, 한·일 관계를 복원해 한·미·일 삼각협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 또 현재 유력 후보들의 외교·안보 노선이나 한·미 관계에 대한 입장이 잘 알려지지 않아 의회 쪽 인사들이 나만 보면 ‘혹시 한국의 양쪽 후보들이 한·미 관계와 관련해 내놓은 자료나 기사가 있으면 달라’고 요청한다. 얼마 전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기고문이나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밝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외교·안보전략 등을 전달하는데, 과거 대선에 비해 충분치 않은 것 같다.”

―한인들이 한국의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미국 내 한인사회는 이미 세대교체가 됐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대들이 40대 초중반이 되면서 미국 사회 주류에 진입한 사람이 많다. KAGC가 하는 일 중 하나가 한인 2세들을 의회 전문가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연방 하원에만 4명의 한국계 의원이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나 정치권은 1980년대처럼 한인 1세대들과 정책을 만들고 교류한다. 한인 1세대들은 미국에 살며 세금을 내면서도 한국 정치·사회에 관심이 집중된 경향이 있다. 이제는 보호하며 관리하고 통제하는 식의 재외동포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과 미국 내 한인들이 파트너로서 어떻게 역량을 키워 갈지에 대한 장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 바라건대 한국 정치권은 정부를 중심으로 초당적인 외교·안보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미국은 여야가 극한 충돌을 하는 상황에서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 정부가 갖는 외교·안보 전략에 최선을 다해 맞춰 주는 게 상·하원 외교위와 군사위의 기본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