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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정상회담과 북핵

北, 對美 ‘2차 보복 능력’ 갖는 핵 개발 4기 돌입하면 美 개입 무력화시켜 대남 무력통일 꿈꿀 수도
文, 5월 정상회담서 바이든과 북한 사회 질적 변화 모색하고 도발 시나리오 따른 대응책 공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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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이 오는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대북 정책과 관련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의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북핵은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말기 암(癌)’ 단계를 향해 가고 있고, 한·미 동맹은 2급동맹으로 추락하고 있다.

◇‘2급 동맹’ 추락한 한·미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동맹국들과 협력해 외교와 단호한 억지(stern deterrence)를 통해 북핵 위협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은 시도하지만 강력한 제재와 군 방어태세에 방점이 있다. 미 백악관은 금주 내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북 정책 리뷰를 발표한다.

앞서 미 국가정보국(DNI)은 북한이 지난 3년 이상 시행하지 않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올해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런 바이든 행정부의 인식은 문 정부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으며 대북 제재 완화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다. 실체 없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희망을 걸고 ‘남북 대화와 미·북 대화의 선순환’이라는 주문을 몇 년째 외우고 있다.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같은 문 정부의 정체성은 바꾸지 않을 것이고, 이 경우 미국은 민감한 안보 문제에 대해 앞으로도 한국과 사전 협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백악관은 대북 정책 리뷰와 관련해 ‘동맹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일본의 조언 등이 역할을 했다”고 답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국은 이미 일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2급 동맹으로 추락했다.

◇‘북핵 癌’의 발전 단계

문 정부의 대북 인식은 지난 30년간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과는 동떨어져 있다. 한국 안보에 암과 같은 존재인 북핵은 3기에서 4기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모른 척하고 있거나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기는 외과수술식 군사 조치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던 1992∼2005년까지의 시기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며 시작된 위기가 제네바 합의로 봉합됐다가 후일 다시 고조되며 9·19 공동성명에 이르렀다. 이 시기는 영변의 플루토늄 프로그램이 북핵 문제의 거의 전부였으며 실제 미국은 1994년 영변 폭격을 고려했었다.

2기는 2006년 북의 최초 핵실험부터 2017년 수소폭탄 실험과 ICBM 시험까지의 12년간. 6차례 핵실험과 100번이 넘는 미사일 시험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이라크 전쟁 피로감 등으로 미국의 대북 레드라인이 실종된 시기이기도 했다. 플루토늄 시설 외 은폐가 쉬운 고농축 우라늄 시설이 추가됨으로써 문제의 난도가 높아졌다. 이론적으론 외과수술식 조치가 가능했지만 정치적 결단은 어려웠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 핵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3기는 수십 개의 핵무기와 ICBM 기술까지 거의 확보한 북한이 미 본토 핵 공격 능력을 지렛대 삼아 대미 관계 전환을 시도해보던 2018년 이후다. 은닉 고농축 우라늄 시설이 퍼져 국부 수술은 불가능해졌고 미 군사행동은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협상에 나섰다. 북은 대미 관계 전환엔 실패했지만 한국과 미국 양국과의 정상회담을 빌미로 핵 개발로 인해 불편해졌던 중국과의 관계 복원에는 성공했다.

◇말기로 가는 북핵

미·중 대결이 격화한 올 초, 북핵이라는 암은 4기로 치닫는 신호탄을 띄웠다. 북이 올해 안으로 미 본토를 정밀타격하는 ICBM 기술을 완성하는 시험, 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시험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성공한다면 북은 미국에 대한 ‘2차 보복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을 가짐으로써 장차 미국의 한반도 군사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리는 어느 시점에 무력통일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수부대, 사이버 해킹, 생화학탄, 단거리 전술 핵미사일 등이 통일의 실제 도구라면, 한·미 동맹 이완과 ICBM, SLBM 등 전략 핵무기 보유는 북이 통일을 꿈꿀 수 있는 선결 요건이다.

북한이 올해를 핵 개발 4기 진입의 적기로 판단했다면 다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첫째 기술적 도약. 둘째, 바이든 행정부 출범. 미 본토가 북핵의 타깃이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한반도와 일본에서 핵전쟁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트럼프 식의 사고는 북핵 4기 진입을 억제한 측면이 있다. 반면 동맹과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군사 응징은 피할 것으로 보고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미·중 관계 변화. 북은 2019년 하노이 ‘노 딜’로 제재 완화에 실패했을 때 참담했다. 그 후 악화하는 미·중 관계 속에서 중국은 노골적으로 제재의 뒷문을 열어줬다. 이제 북은 대중 경제 종속을 감내하면 생존엔 큰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한다. 북한이 ICBM 시험을 하면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겠지만, 중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2017년엔 중국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우려해 제재 결의에 찬성했다면, 지금은 미국이 대북 공격을 하면 중국은 대만을 공격할 태세다. 대만을 마주한 샤먼시로 한국 외교장관을 초청한 것은 중국의 직설적 대미 메시지로 보인다.

◇정상회담 의제와 정부 과제

문 정부는 오는 한·미 정상회담 때 명백한 북핵 위협에 대해 미국과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 핵우산 제거라는 조건을 전제한 것으로, 북의 ‘비핵화 불가’ 의지를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적어도 북은 이 점에서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 한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데 방점을 두고 독재정권과 친하게 지내는 걸 최우선 외교과제로 삼으니까 미국은 의심하고 북한은 조롱하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 동맹이 2급 동맹으로 전락하는 현실이 국가안보에 치명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은 동맹을 확고히 하고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춰 각종 도발 시나리오의 대응책을 조율하는 자리여야 한다. 동시에 북한 사회의 질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장기전략을 미국과 협의 해야 한다.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에 직면해 한국은 대화와 평화를 외치고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이 ‘뜻밖의 역할 분담’을 부끄러운줄 모르고 정상이라 여기는 비정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나라가 바로 선다.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주영 대사


■ 세줄 요약

‘2급 동맹’ 추락한 韓美 : 대북 전략에서 바이든은 외교적 해법과 단호한 억지 병행을, 文은 대북 제재 완화를 우선하는 문제 해결을 내세움. 양국의 이런 견해차가 지속되는 가운에 한·미 동맹은 2급 동맹으로 추락한 상태.

‘북핵 癌’의 발전 단계 : 북핵은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암과 같은 존재. 지난 30년간 북핵 암은 1∼3기를 거쳐왔으며 4기 말기암으로 진입 중임. 그러나 문 정부의 대북 인식은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음.

말기로 진입하는 북핵 : 文은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맹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해야 함. 또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이전 성급한 대북제재 해제가 안보에 치명적인 禍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공유하는 자리로 삼아야 함.


■ 용어 설명

‘2차 보복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이란 선제 핵 공격을 당하고 남은 핵무기로 보복해 적을 섬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능력. 상호확증파괴를 통한 ‘공포의 핵 균형’의 전제 조건임.

‘조선반도 비핵화’란 북한 비핵화와 함께 남한 역시 핵무기 반입·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은 개념. 북한이 남한의 미 핵우산 철수 등을 내걸며 비핵화를 사실상 거부하는 논리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