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접한 모든 사람이 격노
南에 대한 분노·징벌 의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북한 김일성 일가 최초로 남한 땅을 밟고,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키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남북 평화와 화해 전도사 역할을 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초강경 기조를 주도하는 여전사로 변모한 배경이 주목된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담화에서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라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다소 감정 섞인 발언을 한 것은 대남관계에서 오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신해 철저한 악역을 담당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상당하다. 남북 긴장 국면이 소강상태로 들어가더라도 대남과 관련해서는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김 제1부부장에게 일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에도 지난 4일 김 제1부부장이 내놓은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는 제목의 담화 이후 북한 전역에서 이어지는 호응을 상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담화에 접한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이 격노했다”며 “우리의 최고 존엄을 건드린 인간 추물들에 대한, 그런 자들을 묵인 비호해 나서는 남조선당국자들에 대한 분노와 징벌의 의지로 가득 차 있다”고 전했다.

김 제1부부장은 이희호 여사 별세 때는 직접 조전과 조화를 갖고 판문점을 찾았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런 김 제1부부장이 현재는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대 의식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상반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의 역할과 관련해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김정은이 가장 의지하는 혈육인 김여정이 남북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기품이 있다’는 평가를 할 만큼 고마워했다”면서도 “반대의 상황이 되자 김여정은 북한의 어떤 당국자보다 거침없는 대남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