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매번 변화로 이슈를 낳았던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 왼쪽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 봉감독의 작품 세계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사회비판의식에 위트 찬사받아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에 깃발을 꽂으며 봉준호 감독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봉 감독은 그동안 장르와 플랫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활동해왔다.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위트를 더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흥행 능력도 입증했다. 전 세계 영화계는 벌써 그의 차기작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봉 감독은 지난해 11월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차기작에 대해 언급하며 “대한민국 서울에서 일어나는 독특하고 무서운 사건을 다룬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봉 감독의 영향으로 한국의 문화와 환경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상승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 제작이 늘고, 충무로에 해외 자본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봉 감독이 ‘기생충’을 제작한 과정은 종종 전해진 바가 있다. 작품 하나를 위해 그가 쏟은 땀과 열정을 보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서 아카데미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봉 감독이 직접 메모하고 그린 ‘기생충’ 초기 단계의 ‘스케치’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봉 감독 코미디가 스릴러로 바뀌는 반전의 순간 등 모든 장면의 상세한 상황 설명과 배우들의 대사를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영화를 본 관객은 스케치만 봐도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머리에 그려진다.

미국 영화전문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봉 감독의 ‘스케치’를 소개하며 “봉 감독은 자신의 그림에 주석을 달아 복잡한 스릴러를 세심하게 묘사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봉 감독의 연출은 치밀하고 섬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은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한다고 하지만 오죽했으면 별명이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일까. 배우의 대사나 동작, 세트와 소품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현실을 비트는 코미디가 있으면서도 그 안에 날카로운 시각을 유지하는 건 바로 이런 치밀함에서 나온다. 이를 빗대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는 ‘삑사리의 예술’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거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11기로 졸업했다. 16㎜ 단편영화 ‘지리멸렬’이 1994년 밴쿠버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연출자로 데뷔했다. 장편 데뷔작은 2000년 ‘플란다스의 개’. 해외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지만 흥행에선 쓴맛을 봤다. 그다음 연출한 작품이 ‘살인의 추억’(2003)이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시골형사 송강호와 서울형사 김상경의 대립과 호흡이 흥미진진했다.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고, 전국 525만 명을 동원했다. 작품성은 물론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인정받았다.

2006년 선보인 ‘괴물’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이었다. 국내에선 괴수영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보란 듯이 성공을 거뒀다. 1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었지만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기본적으론 평범한 시민이 한강에 출몰한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인데, 실은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었다.

2009년 ‘마더’에선 조금 방향을 틀었다. 블록버스터에 도전했던 봉 감독은 이번엔 인간의 광기를 파헤치는 탐미주의적 시선을 보여줬다. ‘국민엄마’ 김혜자를 억새밭에서 춤추게 하고, 미남배우 원빈을 어수룩한 ‘촌놈’으로 변화시켰다. 철저히 기존의 이미지를 깨뜨리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2013년 ‘설국열차’로는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배우들이 기꺼이 얼굴에 분장을 잔뜩 하고 출연했다. 얼어붙은 지구를 끝없이 달리는 열차 속 인간군상을 그렸다. 사회 계급의 문제를 열차의 꼬리 칸과 머리 칸으로 구분해 묘사했다. 2017년 넷플릭스 영화 ‘옥자’에도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동물 학대, 생명 경시, 자본주의에 대한 봉 감독의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