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 대만 총통 선거 D-3

경제성장률 2%대로 떨어지자
‘저혈압 환자’조롱…인기 추락

시진핑 ‘일국양제’에 반발하며
반중 정서 자극… 판세 뒤집어

美·中 무역전쟁에 ‘반사이익’
외국인 투자도 계속해서 증가

차이잉원, 지지율 여론조사서
한궈위에 33.2%P 크게 앞서

오는 11일 대만 총통·입법위원 선거를 닷새 앞둔 6일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고향인 핑둥(屛東)현 펑강(楓港)촌에서 닷새간의 자동차 유세를 시작했다. 이날 오후 차이 총통이 방탄 경호차에 올라타 손을 흔들자 주민들의 뜨거운 환호가 쏟아졌다. 차이 총통이 가는 곳마다 인파가 몰렸다. 경찰이 900여 명의 평화유지 병력을 투입해야 했을 정도다.

대만 양안(兩岸)정책협회가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마지막 여론조사에선 민진당의 차이 총통 지지율은 54.9%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22.1%)을 압도했다. 같은 날 발표된 빈과일보의 여론조사에서는 차이 총통이 48.6%, 한 시장이 15.4%로 33.2%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재선이 유력한 차이 총통이 원래부터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던 건 아니다. 경제는 추락했고, 그가 내놓은 정책은 잇달아 국민의 반대에 부딪혔다. 한 시장의 급상승에 차이 총통은 한때 지지율 1위를 내주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차이 총통이 반전의 기회를 잡은 계기는 외적 요인 때문이었다. 홍콩 시위에 힘입어 덩달아 확산된 대만 내의 반중 정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대만경제의 반사이익이 주효했다.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차이 =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차이 총통은 역대 총통 중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로 꼽혔다. 탈원전, 반중국 등 이념을 앞세워 경제에 실패한 총통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취임 1년을 맞은 2017년 5월 대만 TV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 지지율은 28%로 1년 만에 20%포인트가량 곤두박질쳤다. 역대 가장 인기 없는 총통으로 꼽혔던 리덩후이(李登輝·37%)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과격한 탈원전 정책으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면서 차이 총통은 또다시 궁지에 내몰렸다. 10년간 동결했던 최저임금을 2016년 5%, 2017년에도 5.6% 인상했지만 부작용으로 고용률은 더 떨어졌다. 일률적인 노동시간 단축에 재계는 물론, 실질임금이 감소한 노동자도 반발했다. 대만 경제성장률이 2%대로 추락해 ‘저혈압 환자’라는 조롱을 받았다. 젊은층 실업률은 치솟았다. 특히 차이 총통 집권 후 중국 견제가 심해지면서 중국 관광객 감소로 관광산업 비중이 높은 대만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2018년 11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차이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은 22개 현·시장 자리 가운데 6개를 얻는 데 그쳐 참패했다. 야당인 국민당은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을 비롯한 15곳을 싹쓸이했다. 가오슝에서 당선된 한 시장은 단숨에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반전의 계기는 지난해 1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입에서 나왔다. 시 주석이 대만정책과 관련해 ‘1국 2체제(一國兩制)’에 의한 양안 통일을 감행할 수 있다는 강경발언을 쏟아내자 차이 총통이 반론을 제기하면서 대만의 반중 정서를 자극했다. 한 달간 10%포인트 넘게 뛰어오른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같은 해 5월 40%대를 회복했다.

◇홍콩시위·무역전쟁으로 어부지리 얻어 =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면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더 뛰어올랐다. 그는 첫 시위 당일인 지난해 6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콩 시위 사진을 올린 뒤 “대만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견지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기 민진당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차이 총통의 이러한 발언은 매일 미디어를 타고 대만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같은 달 25일 대만 방송사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총통 지지율 1위로 치고 올라왔다. 한 시장과의 양자 가상 대결에선 50%대 36%로 여유 있게 앞서기 시작했다. 5월 8일 같은 조사에선 차이 총통이 38%, 한 시장이 50%였다. 친중 성향의 한 시장은 “나는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지지율이 폭락하자 “대만 땅에 일국양제는 없을 것”이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지난해 7월부터 본격화한 미·중 무역전쟁도 차이 총통의 재선 가도에 단비를 뿌렸다. 대만 정부는 올해 자국 성장률을 2.19%로 잡았다가 예상 밖의 강세를 보이자 예상 성장률을 2.5%까지 상향 조정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대만을 미·중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국으로 꼽고 2020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만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지난해 3분기 9.4%포인트 증가했다. 한국과 일본의 해묵은 신경전까지 대만 경제를 도왔다. 해외관광의 ‘대체지’로 부상한 대만은 관광객 수가 2018년 1110만 명에서 지난해 1180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대만 총통 선거 때마다 노골적인 선거 개입을 해왔던 중국 당국도 이번 선거만큼은 시들해진 모습이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대만 유권자에 대한 각종 당근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예년과 같은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카드는 꺼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정부가 대만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중국 스파이의 내부 고발은 오히려 차이 총통의 인기만 더 높여준 결과를 낳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국방수권법에 대만 선거에 대한 중국의 방해 공작을 미 의회에 보고하도록 명시된 점도 차이 총통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