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질서정연 18일 대규모 비폭력 평화 집회가 열린 홍콩의 한 거리에서 구급차가 등장하자 우산을 쓴 시위대가 자리를 비켜 차량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주말 170만 비폭력·평화시위
중앙정부 무력개입 빌미 차단

2030 중심 새로운 홍콩 열망
이슈 확산·거세진 자유 물결
끝까지 관철땐 中과 갈등격화
무장병력 투입 등 우려도 증폭

홍콩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시민 17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11주차 주말시위는 평화적으로 끝났지만, 근본적인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당장은 비폭력 시위로 중국 중앙정부의 무력 개입 빌미를 막아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홍콩시민들은 12주차 주말시위를 예고했다. 19일에는 대학생들의 동맹휴학도 계속돼 시위의 동력을 이어간다.

시위를 주도하는 재야단체와 야당은 홍콩 정부에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등 자신들의 당면 요구 사항을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홍콩 정부를 거세게 압박할 태세다. 이미 170만 명의 시민이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사태를 촉발했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철폐 등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시위대의 요구는 점점 더 정치개혁과 경제 불평등 해소 쪽으로 나아가고 있어 이런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시위 사태는 장기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또 이들이 요구 사항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이 과정에서 다시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미 시위대에 대해 ‘폭도’ ‘테러 행위’로 규정한 중국 정부와 갈등이 격화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중국 무장병력 투입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시위대의 주력인 20∼30대 젊은층의 요구는 장관 사퇴나 법안 폐지보다 한 발 나가 2014년 우산혁명 때 구호인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정치개혁 요구로 나아가고 있다. 홍콩 시위의 주도층인 이들 밀레니얼 세대는 중국인으로서 정체성이 약한 데다 새로운 홍콩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중국 공산당에 홍콩을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원인이 홍콩 시위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가 이들 시위대를 중국 공산당 전복을 노리는 ‘색깔혁명’을 지향하는 폭도로 규정하고 있어 시위대의 폭력 양상이 재연될 경우 또다시 무력 개입 우려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시위 사태에 중국이 무력개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18일 오후 홍콩 도심에서 대규모 송환법 반대 시위가 열렸다. 저녁까지 이어진 이날 시위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됐고, 주최 측 추산 17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도심 시위가 ‘비폭력’으로 끝나면서 중국의 무력 개입 명분이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주최 측인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집회가 평화, 이성, 비폭력을 뜻하는 ‘화이비(和理非) 집회’로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홍콩인들은 용감하고 싸움에 능하지만, 또한 평화와 이성, 비폭력을 통해 캐리 람 행정장관이 우리 요구에 응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주 12∼13일 항공 대란을 일으킨 홍콩 국제공항 점거 시위와 그 과정에서 프락치로 의심받는 중국인 2명에 대한 폭행 사태로 시위대의 폭력에 대한 역풍도 커졌다. 이에 홍콩 정부와 경찰에 탄압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평화시위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중앙정부의 무력시위 위협 속에서도 홍콩 시민들이 대규모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시위 사태가 2개월이 넘었지만, 송환법 철폐와 캐리 람 사퇴, 시위대에 대한 ‘폭도’ 규정 철회와 경찰의 무력진압에 대한 비판 등에 홍콩 시민 상당수가 여전히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선전에 중국군이 집결해 있지만, 홍콩 정부는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접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충남 특파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