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무력시위탓 공개 방침 취소
식량지원 계획에도 제동가능성
통일부 “지원 필요… 여론수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0일 한·미 간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워킹그룹 회의 직후 언론에 회의 결과를 설명하려던 계획을 돌연 취소했다. 당초 비건 대표가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계획에 대해 긍정 메시지를 발신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전날 발생한 북한의 무력시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계획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는 이날 비건 대표가 워킹그룹 회의 직후 언론에 회의 결과를 설명하려던 계획을 미국의 요청으로 취소했다고 밝혔다. 워킹그룹 회의에 앞서 진행된 비건 대표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예방 시 인사말도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전면 비공개로 전환됐다.

당초에는 지난 2월 말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비건 대표가 이날 회의를 주재하면서 긍정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신할 가능성이 컸다. 지난 4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의 대북 식량 지원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청와대 발표도 있었던 만큼, 이날 회의에서 대북 식량 지원이 주요 의제로 점쳐지기도 했다. 비건 대표가 이날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한·미 간 공감대 형성이라는 유화 메시지를 발신할 경우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절차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로 회의 의제 자체가 ‘대북 식량 지원’에서 ‘북한 무력시위에 대한 상황 평가와 대응’으로 급격히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언론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한·미 협의를 거쳐 신중한 대북 대응을 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특히 4일 북한의 무력시위에 한·미가 맞대응이 아닌, 대북 식량 지원을 통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찰나에 북한이 또다시 무력시위에 나섰다는 점도 주목된다. 대북 지원을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정부의 판단에 대한 재점검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 장관은 9일 북한의 도발이 워킹그룹의 인도적 지원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아무래도 상황이 바뀐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통일부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차원의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국민적 공감과 지지가 필요한 만큼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