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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영어로 빅딜은 빅과 딜의 2개 단어로 구성돼 있다. 대단한 것, 중대 사건이란 뜻이지만, 속어로는 ‘자알 했어’처럼 비아냥거리는 화법으로도 쓰인다.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주로 기업 간에 이뤄지는 대형 사업의 맞교환을 가리킨다. 주력 기업의 과감한 통폐합이나 매각, 부실기업의 정리까지 포함하는 경제 용어로 붙여서 한 단어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으나, 함께 만드는 누리 사전 ‘우리말샘’에는 전문가 감수 정보로 그렇게 풀이한다. 비즈니스 스와프, 사업교환과 비슷한말이다.

이 경제 용어가 경계를 뛰어넘어 외교·안보 협상장 해설 기사에 등장한 건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전후. 언론 매체를 통해서다. 북핵 관련 기사들을 보면 ‘빅딜 = 통 큰 거래’쯤으로 사용됐다. 북한이 비핵화하면 그 보상으로 경제 발전을 돕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짝사랑이었음이 하노이 회담 때 명백히 드러났다. 김정은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했을 뿐, 북한 비핵화는 눈곱만큼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래서 떠오른 대안이 스몰딜이다. 현존하는 핵 폐기와 제재 해제를 주고받는 것이다. 결국, 북핵 회담이 결렬되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노딜로 끝났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한 비핵화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 비핵화 같은 영문 약어 CVID, FFVD와 웬만큼 친숙해지려던 참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 3월 17일 난데없이 ‘굿 이너프 딜’이란 말이 기사로 소개됐다. 충분히 괜찮은 거래라는 해석이 덧붙은 채로…. 한꺼번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만큼 ‘올 오어 나싱’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청와대 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니라 ‘올 오어 나싱’이다! 정보통신 용어도 아니고, 외국 인명·지명 같은 고유명사는 더더욱 아니다. 보통명사와 동사, 심지어 부사·접속사까지 외국 말로 보도되는 게 현실이다. 이 용어들을 재배열하면, 이제 북핵은 ‘CVID, FFVD와 big deal도 small deal 아닌 no deal을 지나 all or nothing 대신 good enough deal’이 거론되는 단계다. 취재원도 취재기자도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자연스러운 탓이라고 덮고 넘어가기엔 너무 심하다.

신문의 날을 닷새 앞두고 들여다본 신문 기사 속의 우리말 몰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