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30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청와대가 2017년 말 4조 원 규모의 적자 국채를 발행하라고 기재부에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 신재민 인터넷에 추가 폭로

“나도 촛불 들었지만… 바뀐 정권도 똑같았다”

“공무원에 정무적 고려 강요
권력재창출 목적으로 일하나
정권보다 시스템을 바꿔야”

유튜브에 ‘영상’ 게재 이어
고려대 커뮤니티에 글 올려
“靑 관련 영상 더 제작할 것”

정부의 KT&G 인사 개입 의혹 등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더 늦기 전에 정권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전 사무관은 29일과 30일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려 민간 기업 인사 개입 등을 폭로했고, 고려대 재학생·졸업생 인터넷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쓴 글에서 “조직 안의 한두 사람 의지로는 관료제의 행태를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신 전 사무관은 고려대 행정학과 04학번으로 2012년 행정고시에 합격, 기재부 국유재산조정과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7월 퇴직했다. 고려대 재학 당시에는 교육봉사 동아리 ‘운화회’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기재부를 그만둔 뒤 공무원학원과 강의 계약을 했다”며 “청와대와 관련된 사건들의 영상을 몇 편 더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이 원고지 250여 장에 걸쳐 쓴 글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사표를 낸 경위와 폭로 배경은.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 아워’를 읽었다. 책에 나와 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고 내가 견디지 못한 공무원 조직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싫어서 나왔다. 사회를 바꾸려면 공무원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내가 경험하기로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 사회는 딱히 바뀌지 않았다. 어차피 공무원을 그만둔 김에 내가 경험한 일들, 내가 공무원 사회에서 나오게 한 일들을 기록해 둔다면 사람들이 조금 더 공무원 사회를 이해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 정부가 KT&G 사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서울지방조달청 사무실 공용컴퓨터 바탕화면에는 파일 하나가 있었다. ‘대외주의 차관보고’라는 표시와 함께 KT&G 동향보고라는 이름. 내가 근무하고 있던 국고국의 다른 과에서 만든 자료였다. 열어보진 않았지만, KT&G와 관련해 들은 내용이 있었기에 내용은 짐작이 됐다. 이렇게 방치돼서는 안 될 문서이기도 했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지는 알고 있었다. 홀린 듯 파일을 열었다. 파일 내용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경위였든지 간에 그 내용은 이번 정권 청와대(BH·Blue House)에서 KT&G 사장을 바꾸려 한다는 것이었다. KT&G는 민영화된 기업이다. 사기업이다. 민영화된 기업의 사장을 바꾼다는 것은, 삼성이나 LG의 CEO를 교체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청와대에서 LG전자의 CEO를 바꾸라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이번 정권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었기에 내 실망은 더 컸다. BH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행정부는 그 지시를 수행해야 한다. 그게 역할이니까. ”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 나도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바뀐 정권은 적폐청산을 강조했고, 기대는 컸지만 결국 바뀐 정권도 똑같았다. 기재부는 최순실의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라는 것도 막았다던데 왜 이번에는 BH에서 시키는 대로 그대로 다하고 있는 것일까, 더 민주적이라는 정권으로 바뀌었다는데…. 공무원 한 명 한 명이 부당한 업무처리를 보고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간 것이 지난 정권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난 원인 아닌가. 바뀐 정권은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기대는 컸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맞는 정권교체기도 했고 지난 정권이 워낙 좋지 않게 퇴진하였기에 바뀐 정권은 무언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뀐 정권도 결국 똑같았다.”

―적자성 국채발행 과정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놈의 정무적 고려. 나는 정무적 고려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 말로만 듣던 정무적 고려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실망스러웠다. 정권이 유지되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정무적 고려인 것인가? 공무원은 해당 정권의 정권 재창출을 사명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승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런 업무 처리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 정권이 아니라 시스템을 말이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