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세밑 한파가 몰아친 31일 오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빌딩 숲 난방 열기 뒤로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 “靑서 KT&G사장 교체 지시”

오너없는 민간기업 인사에
정권때마다 권력압력 논란

“권력남용 적폐” 文정부도
포스코·KT 외압설 잇따라

“靑 개입 사실이면 직권남용
오리발 DNA 또 발동하려나
청와대 스스로 진실 밝혀야”

“청와대가 KT&G 사장을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돼 온 민간 기업에 대한 여권의 인사 개입 의혹 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민간인 사찰, 국채 발행 압박 의혹 등이 잇달아 터지면서, 권력 오·남용을 적폐로 규정해 대대적인 청산작업을 벌였던 문재인 정부에 ‘역풍’이 불고 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공기업을 전신으로 하거나 주인 없는 민간 기업집단의 대표가 교체될 때마다 여권 인사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6월 청와대 정책실장의 포스코 회장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가 20일 만에 철회했다. 당시 바른미래당은 “참여연대 출신들이 청와대를 장악한 것도 모자라 포스코마저 장악하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혹은 지난 4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새 정부의 압박설이 강하게 제기된 것과 맞닿아 있다. 당시 권 회장은 임기를 2년이나 남긴 상황이었으며, 역대 포스코 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기 사임을 대부분 반복해 왔다.

2002년 민영화한 KT도 마찬가지다. 회사 임원들이 국회의원 불법 후원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황창규 KT 회장에게 지난 6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새 정부의 외압설이 제기됐다. 황 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는 기각됐으나 외압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수장을 겨냥한 수사가 반복됐고, 역대 회장 가운데 임기를 완주한 CEO가 현재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미경 CJ 부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돼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됐다.

학계와 재계는 “민간 기업 경영진 인사에 정부가 개입해 온 의혹이 사실이라면 수천, 수만 명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민간 기업의 경영 결과는 책임지지 않고 이권만 챙기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청와대의 KT&G 사장 교체 지시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표적인 직권 남용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은 진실을 원한다. 검찰은 뭘 주저하나. 청와대는 그를 뭐라고 부를까. 그리고 이번에는 무슨 변명을 할까”라며 “설마 이번에도 ‘미꾸라지, 격이 안 맞는 5급 사무관’의 흙탕물 흐리는 헛소리라고 우기면서 ‘오리발 DNA’를 발동할 것인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 교수는 “공무원은 ‘정권’의 부속품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결국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며 “청와대는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동안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던 여러 활동이 과거 정부의 잘못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며 “통치활동이라는 미명으로 정치가 경제의 주체인 기업에 부담을 주어왔던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이야말로 사라져야 할 진짜 적폐”라고 말했다.

이관범·권도경·손기은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