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영한 전 대법관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23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김태규 부장판사 글 파장

“법관탄핵은 삼권분립 위배
법관회의 해산사유에 해당
항간엔 ‘탄핵거래’ 말 돌아
의장단 특정학회로 채워져
당일회의록은 공개도 꺼려”

법관들 반발 확산될지 촉각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출범한 지 1년여 만에 사법부가 완전히 둘로 쪼개졌다. 23일 현직 부장판사가 동료 판사들의 탄핵을 결의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하자”며 맞탄핵 주장을 공론화했다. 지난 19일 법관대표회의가 1표 차이로 동료 법관들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절차 검토 의안을 통과시킨 데 대한 맞불 대응이다. 이에 더해 법원 개혁 방안을 내놓은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사발위) 후속추진단장이 김 대법원장의 미온적인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법원 내부가 자중지란(自中之亂)하며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김명수 리더십이 절체절명의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직 판사 “동료 탄핵은 법관대표회의의 정치행위”= 이날 법원 내부망에 올라온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의 글은 원고지 32장 분량이다. 지난 1년간 법관대표 일원으로 참가하며 느낀 법관회의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지적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 부장판사는 “법관이 법관에 대한 탄핵을 의결한 2018년 11월 19일은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긴 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버린 날로 기억될 것”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탄핵소추 권한은 헌법상 국회의 권한이고 이것을 행사하는 것은 오로지 국회에 의하여 결정돼야 하는 것이지, 법원이 나서서 그 권한을 행사하라고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어긴 탄핵소추 사유에 해당한다”고 법관회의를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법관회의 해산 여부와 동료 법관 탄핵 결의안이 정당한지에 대해 전체 판사들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실시하자는 주장도 더했다.

◇‘대법원 호위조직’ 법관회의 편향성·대표성도 지적 = 김 부장판사는 법관회의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그는 “마지막 법관대표회의가 있기 불과 6일 전에 대구지법 안동지원 법관들이 법관 탄핵을 안건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그 안건은 회의 당일에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온 다른 많은 안건들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다루어졌다”면서 “항간에는 ‘탄핵거래’라는 표현도 나온다”고 일침을 가했다. 특히 “의장단은 당연히 특정 학회로 채워져 있다”며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한,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장악한 법관회의의 편향성 문제도 언급했다.(문화일보 11월 22일자 1면 참조) 그는 “국민의 뜻이나 언론의 질타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당일 회의록은 대외적으로 비공개되기를 바라고 있고, 법관대표들의 소속 연구회는 ‘신상정보’에 해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법관들조차 그 분포가 어떤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의 글을 계기로 법관회의와 판사 탄핵촉구 결의에 대한 사법부 내부의 논란과 재평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판사의 글에 차성안 사법정책연구원 판사는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하는 글 감사하다. 법관이라면 고민해봐야 하는 중요한 쟁점들이 다 망라돼 있다”면서 “쟁점별로 좋은 토론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원지법의 A 판사도 “글 전체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법관회의 결의가 이뤄진 과정과 그 대표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탄핵 의결에 대해 전체 법관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답글을 달았다.

◇‘같은 편’ 사법개혁 추진단장도 공격하는 ‘김명수 리더십’= 김 대법원장은 안팎의 공세에 몰리게 됐다. 특히 사발위 후속추진단장을 맡은 김수정 변호사가 김 대법원장의 개혁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추진단은 김 대법원장의 우군으로 평가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단장과 법관대표회의 추천 판사 등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자중지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죄가 되지 않는다’는 특별조사단의 결정을 뒤집어 검찰에 수사 의뢰한 뒤 보수 판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김 대법원장이 이번에는 같은 편으로부터도 공격을 받는 모양새다.

김리안·임정환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