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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법과대 교수 헌법학

청와대가 6·13 지방선거와 개헌(改憲)을 동시에 투표에 부치기 위해 필요한 국민투표법 개정과 관련해 오는 23일을 시한으로 못 박으면서 국회에 개헌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지난 3월 26일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이래 국회로 공이 넘어갔으나 일차 관문인 국민투표법 개정부터 별 진척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개헌안은 법률안과 달리 일단 국회에 발의되면 심의 과정에서 수정안을 제시할 수 없다. 대통령이 헌법 규정에 따라 발의한 이번 개헌안은 국회에서 60일 이내에 심의해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여야는 개헌의 시기부터 안(案)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 특히, 권력구조에 있어 대통령(여당)안은 대통령제를,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안은 분권형 정부제를 내놓고 있다. 그래서 여야가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는 한 현 국회의 의석 분포에서 개헌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여야는 대통령제·의원내각제·이원정부제 등을 가리지 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우리 헌법 현실에 적합한 정부 형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행 헌법에 대한 개헌 논의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한 권력구조의 개편에서 출발했다. 이미 현행 헌법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기소됐고, 이 중 한 명은 탄핵소추·파면되면서 현 대통령제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대통령의 개헌안을 보면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와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정부는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 삭제, 법률안 제출권의 제한, 헌법기관의 구성원에 대한 임명권 축소 등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분산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여전히 감사원과 국가 핵심 권력기관의 인사권 등이 주어져 있어 권한 집중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야당의 개헌안은 대통령과, 국회가 선출한 총리에게 권한을 분산하는 분권형 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원정부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발생하는 폐해는 없지만,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 국정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을 주고 있지만, 국정 혼란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개헌안이 권력구조 개편에 소극적인 것은 헌법을 개정하더라도 현 정부를 유지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개헌안 부칙에 현 대통령의 임기를 규정한 것에서 볼 수 있다.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확정되고 공포와 함께 효력을 발생함으로써 현행 헌법이 된다. 헌법 부칙에 따르자면 4년 연임 대통령제의 정부에 5년 단임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아무리 헌법 부칙에 대통령의 임기를 경과규정으로 명시하더라도,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 간에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헌법의 규범력을 부정하는 것이 돼 국가권력의 헌법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동안 개헌 논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축소 문제로 인해 힘을 받지 못했다. 권력구조가 개편되면 새 헌법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새로 구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인해 개헌 논의가 시작됐고, 그 폐해가 반복되고 있으므로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권력구조를 획기적으로 개편하지 않는다면 개헌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 개헌 논의의 틀이 만들어진 만큼 시간을 갖고 여론을 수렴하면서 진지하고 신중하게 개헌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국가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 올바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