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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대회 ‘디 오픈’ 열리는 ‘올드 코스’

스코틀랜드 동쪽. 북해에서 불어오는 황량한 바람은 백사장을 지나 짧은 이끼 같은 억센 갈대를 흔들어 놓는다. 갈대숲을 넘어온 바람은 낮은 구릉 지대를 할퀴고 지나가면서 넓은 대초원 위에 잠시 머무른다. 구릉 지대의 북쪽에 바닷물이 빨려 들어와 세인트앤드루스 시가지보다 더 큰 쓸모없는 염전 늪지대가 형성돼 있다. 그나마 서쪽으로 조금 펼쳐진 경작지 덕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

북극에 인접한 그린란드섬에서 직선 으로 세인트앤드루스까지 4000㎞ 남짓.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부터는 670㎞다. 위도 56도로 한국의 38선보다 18도나 높지만 겨울에도 혹한이 없다.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인위적인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경이로운 자연이 선사한 구릉 지대를 야생 토끼, 양 무리가 수없이 지나다니며 다져 놓았다. 그렇게 그곳에 페어웨이와 그린 형태의 골프 코스가 만들어졌다. 세월의 흐름이, 위대한 자연이 인류에게 천혜의 골프장 올드 코스를 선사한 것이다.

기독교도가 예루살렘 성지를 찾듯이 골퍼들은 올드 코스를 찾는다. 그들은 고행길을 걷는 순교자의 마음으로, 스코틀랜드 미스트로 불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라운드를 한다. 뼈가 시리도록 찬 기운을 감은 채 플레이를 마치고 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경외감이 찾아온다. 수많은 언어로 올드 코스를 예찬한다. ‘리빙 하트’(살아있는 세인트앤드루스의 심장)라고 외치기도 한다. 1599년 금지된 일요일에 골프를 했다는 죄목으로 목이 달아난 대주교의 무덤을 떠올려 ‘가톨릭 수도원의 마지막 안식처’로 부르기도 한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골퍼들의 기운이 맴도는 골프장이기에 선조들의 영령이 존재한다고 믿는 곳이다.

보비 존스는 1921년 처음으로 디 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올드 코스를 찾았다. 골프의 성인으로 추앙받던 그도 처음에는 올드 코스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했다. 바람과 갈대, 언덕과 음습한 기운이 그를 괴롭혔고, 3라운드 8번 홀에서 마침내 스코어 카드를 찢게 했다. 존스는 “무슨 이런 놈의 코스가 다 있어! 다시는 이곳에서 라운드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올드 코스에 무릎 꿇은 지 6년 뒤인 1927년 존스는 이곳을 다시 찾아 우승하면서 기어코 올드 코스를 정복했다. 1929년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존스는 1971년 임종 직전에 “내가 죽기 전에 찾고 싶은 골프장은 오직 올드 코스뿐”이라고 말했다.

올드 코스에선 달 표면에 선 것처럼 울퉁불퉁한 황량함을 느낀다고 골퍼들은 말한다. 벙커는 항아리처럼 깊고 좁아 한 번 빠지면 차라리 뒤로 빼야 한다. 무모하게 앞으로 날렸다간 더 큰 재앙을 초래한다. 골프의 신이 코웃음을 친다. 그래서 올드 코스 벙커의 별명은 교장 선생님의 코, 사자 입, 시체를 담은 관, 죽은 자의 무덤 등으로 불린다. 2개 홀이 함께 쓰는 더블 그린에 페어웨이는 옆 홀과 구분되지 않아 라운드 도중 헷갈릴 수밖에 없다. 엉뚱한 그린을 향해 어프로치 샷을 날리고 퍼팅하는 우스운 꼴이 다반사다.

라운드를 마칠 때쯤 유명한 돌다리 ‘스윌컨 번 브리지’를 건너야 한다. 그 옛날 아낙네들이 빨래한 옷가지를 여기에 널곤 했다. 스윌컨은 빨래, 번은 냇가라는 의미다. 여자들이 빨래한 옷가지 위로 공이 떨어지곤 했다. ‘노 터치’ 룰에 의해 빨래한 옷가지 위에서 볼을 쳤다. 다시 더러워진 옷가지 탓에 아낙들은 아우성을 치지만,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1타, 1타에 신경을 쏟았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는 장애물 위의 볼은 무벌타로 옮겨놓고 쳐도 된다’는 룰이 생긴 게 아닐까. 수백 년 전 아낙들과 남성들의 빨래 싸움까지 떠올리게 하는 초원이 올드 코스다. 대개는 불평과 함께 욕을 내뱉으면서 떠나지만, 다시 도전하는 곳이 올드 코스다. 올드 코스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남양주골프박물관장

이미지 크게보기 미국의 조던 스피스가 2015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디 오픈 3라운드 18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스피스의 앞에 올드 코스의 상징인 스윌컨 번 브리지가 보인다. 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