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현충원 참배 이재명(맨 앞쪽) 성남시장이 31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등록을 앞두고 전직 대통령 묘소 등에 참배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에 들어서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초등교 졸업 직후 공장서 노동
“세련은 사치… 가벼움이 전략”

“문재인은 태평시대 세종이고
난 변방장수 돌파력 지닌 태종”

2007년 정동영 따라 탈당 전력
지금도 주변에 옛 DY계 인사

급진적 주장에 從北논란 일자
“난 北추종하는 정신병자 아냐”

“법치 강조하는 나는 중도보수”
정치적 수사로 외연확장 노려

패륜설엔 “인격부족 탓” 해명
불륜설엔 “공작과 음해” 단호

이재명 성남시장은 스스로 ‘아웃사이더’라 부른다. 시골 ‘깡촌’ 태생, 초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시작한 공장생활, 검정고시로 이어간 학력, 기득권층과 중앙정치에 대한 ‘대결 의식’ 같은 이력이 아웃사이더 기질의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에겐 투박하고 반항적이며 전투적인 이미지가 자연스럽다. 31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에 대선후보 경선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을 때에도 김영삼·김대중 묘소만 참배하고 이승만·박정희 묘소엔 가지 않았다.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라는 자신의 책 제목처럼 그는 늘 변방 투사의 정신으로 무장했고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했고 시의회와의 갈등으로 준예산 사태를 겪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촛불집회의 한가운데 서서 “박근혜 하야” “이재용 구속”을 누구보다 먼저 외쳤고, 덕분에 한때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위협할 정도로 대선주자 지지율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이는 이 시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 ‘6大 키워드’로 본 李

- ‘無수저’

이 시장은 경북 안동·영양·봉화의 접경인 심심산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을 나가는 바람에 어머니 혼자 산전(山田)에서 7남매를 키웠다. 이 시장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흙수저’가 아니라 ‘무수저’ 출신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고, 프레스 기계에 왼팔이 끼이는 산재를 당해 군도 면제받았다. 소년 이재명은 열악한 환경에서 주경야독하느라 후각의 절반 이상을 상실했지만 결국 검정고시로 중·고교를 거쳐 대학까지 갔다.

이 시장은 정치지도자로서는 가볍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저서 ‘꼬리를 잡아…’에서 “세련되고 진중하고 차분한 행동양식에 익숙해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떠돌던 아이에게 세련은 어쩌면 사치였는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이 시장은 ‘가벼움’을 자신의 정치철학으로 연결하려 한다. 권력의 맛에 취하지 않기 위해, 권위적으로 지배하는 시장이 되지 않기 위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책에서 말한다. “나는 심부름꾼이나 대리인, 편안하고 함부로 해도 괜찮은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 가벼움은 나의 전략이다. 주인인 주권자와의 소통을 위해서이다.”

이 시장은 지난 23일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공단 내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곳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소년 이재명이 일했던 공장이다. 이 시장은 “어머니, 그 소년노동자가 오늘 바로 그 참혹한 기억의 공장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려고 합니다”라며 출마 선언장 단상에 모신 어머니를 향해 울먹였다.

- 아웃사이더

이미지 크게보기 프레스 기계에 팔이 눌려 6급 장애를 얻은 대양실업(글러브 공장) 노동자 시절(당시 16세)의 모습.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 이 시장을 사로잡은 것은 변방의식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변방은 버려지고 소외된 곳이 아니라 시민의 터전이자 중앙을 개혁하는 전진 기지다. 그래서 성남 시장 자리는 개혁을 지향하는 ‘변방의 사또’다. 이 시장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향해, 지역에서 중앙무대를 향해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품어왔다. ‘꼬리를 잡아…’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 쓰인 책이다. 방송인 김미화와의 대담에서는 “바닥이 바뀌어야 진짜 바뀌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우리 역사에서 적폐 청산은 늘 변방에서 시작됐다고 믿었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군 가운데 문 전 대표를 ‘태평시대의 세종’으로, 안희정 충남지사를 ‘변방에 파견 나온 고관 대신’으로, 자신을 ‘변방 장수의 돌파력을 지닌 태종’으로 묘사했다. 난세의 영웅은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무대의 경험 부족은 때로 그의 정치력 결핍을 드러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덕목과 자질을 훈련받지 못한 채 촛불과 광장 민심에 ‘무임승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촛불이 잦아들고 친문(친문재인) 그룹과의 갈등이 증폭되자 지지율이 가라앉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 정동영의 그림자

성남시장 당선 후 중앙과는 담을 쌓아온 이 시장이었지만 그에겐 중앙정치와 관련된 ‘히든 스토리’가 하나 있다. 지금은 국민의당 소속인 정동영(DY)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였을 때의 일이다. 성남시장을 꿈꾸던 그는 잠시 중앙당에 발을 디디면서 노무현 정부의 실세였던 정 의원과 인연을 맺었고 2007년 대선 국면에서 DY를 따라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이후 정치조직의 귀재로 불리던 이상호(일명 미키루크) 등과 함께 DY 팬클럽인 ‘정통’(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을 이끌었으며 DY 대선 캠프 국민통합추진운동본부 공동대표까지 지낸다. 그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스떼기’라는 동원 논란에 휘말리면서 친노 그룹과 극한 대립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이 시장 주변에는 옛 DY계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DY 대선캠프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문학진 전 의원, DY의 핵심 측근이었던 함효건 휴먼리서치 대표 등이 이 시장을 돕고 있다. 미키루크 이상호도 최근까지 이 시장을 도왔고 ‘정통’ 멤버 일부는 이 시장의 전위대인 ‘손가락혁명군’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진영이 이 시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이런 점들이 작용했다.

- 종북 논란

이미지 크게보기 법정에서 변론하고 있는 변호사 시절(28세)의 모습.

이 시장을 괴롭히는 질긴 꼬리표 중 하나가 종북 논란이다. 방송인 정미홍도 ‘이재명= 종북 인사’ 공세를 폈다가 소송을 당했다. 군 복무 기간 10개월 단축 공약,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한·미 관계와 자주적 균형외교론 설파,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 재협상론 제기 등 외교·안보와 관련된 급진적 주장이 이 시장의 종북 논란을 키우는 소재들이다. 여야 정치권과 재야·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주사파 혁명론과 민족해방(NL) 이론으로 무장한 구 통진당 인맥과 경기동부연합 운동권 세력이 이 시장의 실질적인 정치 기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시장은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이 시장은 “나는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시장은 자신에 대한 종북몰이에 단호하게 법적 대응을 벌이겠다는 각오다.

- 보수주의자

이 시장은 최근 펴낸 책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서 “우리의 헌법과 법질서,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서 “(나를) 중도보수로 보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다. 재벌이든, 대통령이든 죄를 지으면 처벌받는 것을 보여주는 게 법치주의의 구현이며 진짜 보수의 역할이라는 논리도 편다. 이 시장이 중앙정부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CEO 경영대상’ 수상자이며,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대한민국 글로벌 CEO’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이 시장은 분당 지역 득표율이 자신의 보수성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믿고 있다. ‘천당 아래 분당’으로 불릴 정도로 보수 성향이 강한 이 지역에서 2014년 지방선거 때 득표율이 2010년 때보다 9.3%포인트나 올라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시장이 성남에서 재선에 성공한 것은 시정(市政)을 인정받아서이지 보수성향 때문이 아니다”라며 “이 시장이 자신을 보수로 규정하는 건 외연 확장을 위한 정치적 레토릭”이라고 평가한다.

- 패륜·불륜설

패륜설은 형수와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싸운 전화 녹음파일 내용이 항간에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이 시장은 “거친 인생을 살았던 상흔들”이라면서 “내 인격 부족 탓에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형님이 어머니에게 패륜 행위를 하고 성남시장인 동생 자리를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려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불륜설은 2010년 배우 김부선 인터뷰를 계기로 시작된 후 잊을 만하면 되살아난다. 이 시장은 “나에 대한 종북몰이나 패륜·불륜 모함, 이 모든 음해를 조장하는 공작세력이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 삶의 굴곡이 컸던 만큼 이 시장을 둘러싼 ‘설’들도 적지 않다. 그걸 일일이 해명하고 결백을 증명하기에는 대선 가도에서 해야 할 다른 과제들이 너무 많다. 중원의 장악을 꿈꾸는 변방의 투사가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대선을 앞두고 언제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모르는 이런 유의 설들이 자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인물론과 정책·비전이 아닌 풍문과 뒷담화로 안내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