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돈에 매수된 것이 아닌가.”

최근 들어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에 두 명의 한국인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반대 의견을 기고했다는 기사를 본 중화권 언론계 지인이 기자에게 반문했다. 어떻게 국가 안보 사안을 두고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상대국가의 입장을 담은 기고문을 ‘런민르바오’에 기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이었다면 무사치 않았을 일이다.

관영 매체들은 사드 반대와 관련한 한국 내의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긁어모아’ 침소봉대하며 보도하고 있다. 국내 사드 반대파들은 중국 선전매체의 동어반복적인 주장을 근거로 사드 반대를 주장하고 중국 선전매체들은 이들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런민르바오에 글을 기고한 것으로 나온 김충환 청와대 전 비서관은 실제로 글을 ‘기고’ 한 적이 없다. 그는 “기고 요청을 거절한 뒤 취재 형식으로 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글을 보면 작법, 구조, 단어가 한눈에 봐도 한국인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런민르바오 기자가 쓴 중국의 주장이 담긴 글에 전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이용당한 것이다. 중국 매체에는 각종 한국 내 전문가들, 정치인, 그리고 시민들의 이름이 넘쳐난다. 지면에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당사자들은 본인의 주장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정도는 파악하길 바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들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의견을 청취’한다고 한다. 민간을 접촉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떤 학자나 연구원도 한국의 국회의원을 만나 관영 매체 주장과 벗어나는 얘기를 할 수는 없다. ‘민간’이라고 하는 대학, 연구소 모두 국가 기관 산하로 ‘공산당 서기’가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선전 매체들에 좋은 먹잇감이 돼 ‘사드 철회 문제를 중국과 협의하러 온 한국 국회의원들’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의 대대적인 보도를 보는 일이 없길 바란다.

박세영 베이징 특파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