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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고 주말에 벼락과 우박을 동반한 비가 온다지만 봄은 오고 있습니다. 봄꽃 개화시기를 살펴보니 벚꽃은 서귀포에 24일 피기 시작해 4월 9일이면 서울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차가움과 따뜻함 사이의 자연스러운 밀당이 이뤄지는 봄. 미래의 버찌를 향해가는 벚꽃. 하이데거와 릴케를 연구한 마흔여섯의 독일 철학자 나탈리 크납은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어크로스)에서 인생의 과도기를 봄과 벚꽃에 비유합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이 벌어져 안심할 수 없는 인생은 과도기의 연속입니다. 불확실한 나날들,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아이를 낳은 뒤 부모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견뎌낼 수 있을까. 중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실직한 뒤 새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은퇴한 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실패할까 두렵고, 잘못된 결정을 할까 두렵고, 너무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닌지, 너무 소극적으로 임하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크납은 인생의 과도기를 자연과 인류 역사를 끌어와 사유하며 과도기를 벚꽃처럼 생각하라고 합니다. 벚꽃은 버찌로 열매를 맺지만 버찌가 된 다음에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수정되기 전날 밤 서리에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신의 일을 다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숱한 불확실한 시간 역시 지금 주어진 수단으로 진정 노력하고 있다면 우리는 늘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삶은 행복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삶들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오히려 과도기야말로 새로운 삶으로 갈 수 있는 창조적인 시간이라고 합니다. 들과 숲이 교차하고, 바다와 땅이 만나는 이행대가 새로운 생명을 품어내듯이 말이죠. 이 경계지대는 서로 다른 자연과 자연이 만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기에 들에도 숲에도 없는 새로운 생명이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들의 불확실한 시간도 직선으로 전개되는 틀에 박힌 삶의 반경에는 끼어들 수 없는 경험과 깨달음과 느낌을 안겨줍니다. 그러니 과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면적으로 수용하라고 합니다. 이때 수용은 체념이 아닌 삶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창조적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생 고비들에서의 일들이 철학자의 조언처럼 쉽지 않겠지만 한 시인도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민복의 시 ‘꽃’)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계 끝은 벼랑이 아니라 또 다른 길입니다. 두려운 경계에서 기어이 예쁜 꽃을 피우겠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큰 보폭으로 경계를 지나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