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설희 건국대병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진료실에서 컴퓨터의 뇌 사진과 뇌 모형을 보여주며 치매의 발병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한설희 대한치매학회 전 이사장(건국대병원장)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6일 현재 치매 환자는 66만 명을 넘었고, 이 추세대로면 2030년 127만 명, 2050년 271만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2013년 11조7000억 원에서 2050년 43조20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 이상이 걸릴 정도로 치매는 흔한 질병이 됐다. 건망증 증상을 조금씩 보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리게 하는 치매의 무서움은 어느새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주제가 됐다.

치매 연구와 치료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설희(62) 대한치매학회 전 이사장을 지난 15일 건국대병원장실에서 만났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한 병원장은 국내 치매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1992년 미국 듀크대병원 알츠하이머병연구소 연구원으로 시작해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 의대 알츠하이머병연구소 교수, 대한신경과학회 국제이사, 대한치매학회 회장·이사장 등을 역임한 치매의 대가다. 그는 노인 복지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대통령 표창, 2003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런 한 이사장을 만나자마자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치매가 무엇이고 왜 생기는지, 치료는 되는지, 예방은 가능한지 등을 물어봤는데, 2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그는 지루한 기색 없이 문외한의 질문에 때때로 자료를 찾아 보여주며 성실히, 열정적으로 답변해 줬다.

―치매 환자가 갑자기 많아진 건가.

“예전에도 치매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 60세의 1∼2%가 치매인데, 나이가 5세 증가할 때마다 대략 두 배씩 증가한다. 즉 65세의 5%가 치매이고, 85세가 되면 약 47%가 치매 환자다. 두 분 중 한 분이 치매인 거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 약 3년에 수명이 1년씩 늘어나는 추세다. 60년 전보다 수명이 20세가 늘어났다. 이전에는 치매가 드물었는데 노인 인구가 늘어나니 치매 환자도 많아진 거다.”

―치료 전망은.

“일상 인지기능이 망가지면 치매라 하는데, 예전에는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시면 뇌 부검으로 조직검사를 해서 단백질 찌꺼기를 확인해야만 알츠하이머 진단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의료과학의 발달로 살아있는 사람한테서 그 찌꺼기를 볼 수 있게 됐다. 10∼15년 정도 미리 뇌 사진을 찍어서 이 사람은 나중에 치매가 될 것인지 예측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알츠하이머병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뇌에 이상 단백질이 20∼30년 동안 쌓여 60대 이상에서 증상이 나타난다. 다른 말로 하면 20∼30년 동안 예방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혈관 위험인자를 잘 조절하거나 운동습관을 들이면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치매는 60% 정도가 알츠하이머이고, 20% 정도가 혈관성 치매다. 나머지는 두 개 원인이 합쳐져 발생한다. 서양은 혈관성 치매가 10∼15%인데 우리는 그보다 높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이 원인이 된 치매 발병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런 혈관 위험인자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이 더 빨리 진행되므로 조기에 체중이나 혈압 관리를 잘하면 치매를 줄일 수 있다.”

―현재까지는 치료제가 없다고 봐야 하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질문이다. 예를 들면 감기는 특효약이 지금 없다. 감기에 걸리면 어떤 사람은 열이 나고, 누구는 기침을 심하게 하고, 누구는 설사를 한다. 한데 그런 종류를 다 감기라고 하면서 특효약이 없어 열나면 해열제를 쓰고, 기침하면 해소약을 쓴다. 똑같이 알츠하이머도 병의 원인이 밝혀진 것도 아니고 완치제도 없다. 감기에 해열제를 쓰듯이, 기억력 중에서 특히 주의집중력을 도와주는 정도다. 신경세포가 70% 정도 없어지면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사실 조기에 진단하지 않으면 70%쯤 망가진 뒤에야 증상이 나타나니 약이 있어도 치료가 어려운 거다. 남은 신경세포 중에서도 서로 연결하려면 신경세포 전달물질이 필요한데, 그것도 나오면 부서진다. 그 부서지는 것을 막는 게 요즘 나오는 약이다. 최대한 없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그걸 유지하는 동안에는 주의집중도 더 잘 되고 단기기억도 살아나는 정도이지 한번 없어진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은 없다.”

일단 치매에 걸리면 그것을 되돌릴 치료 약은 없다는 거다. 이 때문에 예방에 치중해야 하고, 현재 치료는 치매의 진행을 완화하는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그는 “향후 10년 이내에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완화할 수 있는 약물이 개발돼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수명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고령자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사용하는 약물은 완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고 증상을 완화해 주는 대증요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치매는 왜 걸리나.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병이 아니다. 기억력 저하 등 인지기능이 상실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정보를 생산·전달하는 신경세포의 수와 기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즉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경세포가 사멸하므로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세포 수가 줄어든다. 우리 몸의 다른 조직들, 예를 들면 피부나 근육 등은 손상돼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뇌 조직은 재생능력이 없어 일단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노화에 동반돼 나타나는 신경세포 사멸의 원인은 아밀로이드 베타단백이라는 물질이 뇌 조직 내에 축적돼 신경 독성을 나타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밀로이드는 뇌 신경세포 안에서 정상적으로 생산되는 물질이다. 생리적 농도에서는 신경세포의 활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정확한 기능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아밀로이드는 정상 상태에서는 분해 효소에 의해 완전히 분해돼 제거되나, 나이가 들면서 분해 효소의 기능이 떨어지면 조금씩 찌꺼기가 남게 된다. 오래된 수도관 안에 이물질이 끼는 것과 유사하다. 정상적으로도 70∼80세 노인의 뇌에는 소량의 아밀로이드가 쌓이게 된다. 향후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 뇌에 쌓이는 아밀로이드의 양이 더 많아진다. 만약 인간의 수명이 130∼140세에 이르면 모든 사람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년기 이후 어떻게 뇌를 관리하는가에 따라 아밀로이드 침착(沈着) 속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우울증, 만성 불면증을 겪는 경우 아밀로이드가 적절히 제거되지 않아 더 많이 쌓이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 혈관 위험인자들에 의해 아밀로이드 생산량이 많아지거나 염증 반응이 가속화돼 더 빨리 쌓이게 된다.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외에 넘어지거나 맞아서 뇌를 다치는 외상성 치매, 술을 계속 마셔 뇌가 작아지는 알코올성 치매 등이 있다. 90여 개 서로 다른 요인들이 치매를 유발한다.”

―술을 마시고 소위 필름이 끊기는 것을 치매 초기 증상이라고 봐도 되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술을 많이 마심으로써 신경 전달물질이 차단돼 순간 기억을 못 하는 거다. 연구자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과도한 음주 때문에 일시적인 기억망각증이 자주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5배 정도 높다. 실제로 만성 알코올의존증 환자들의 뇌를 촬영해 보면 동년배들보다 뇌가 한 7∼10년 정도 더 빨리 퇴화돼 있다. 술을 자주 마시면 그만큼 신경세포가 많이 망가진다.”

직업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술을 적잖이 마시는 입장에서 갑자기 무서워져 대책이 있는지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나.

“치매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병이 아니고 적어도 20∼30년에 걸쳐 뇌 안에 서서히 독성물질이 축적돼 생기는 질환이므로 원인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는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독성물질의 축적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생각 바꾸기’를 권한다.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취하고 나쁜 것은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 지속적인 두뇌 활동, 유산소운동, 항산화 물질이 많이 포함된 뇌 건강식은 신경세포의 활성을 도와주며 신경세포의 가지치기가 활발해져 아밀로이드 독성에 어느 정도 저항성을 갖게 해 신경세포가 사멸되는 것을 막아준다.”

―두뇌를 많이 쓰는 게 좋고, 특히 외국어 공부가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는데.

“문맹, 무학인 사람들이 8년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에 비해 치매 위험성이 5배 정도 높다. 왜냐하면 우리가 뇌를 쓰고 뇌 활동을 지속할수록 그걸 기억하기 위해 신경세포들이 가지를 뻗는다. 그래서 평생 공부가 중요하다. 캐나다 연구 중에 재미있는 게 있다. 밴쿠버는 영어를 쓰는데 퀘벡주, 토론토 이쪽으로 가면 프랑스어를 같이 쓴다. 그것에 착안해 캐나다 학자가 퀘벡과 밴쿠버의 치매 발생비율을 조사해 봤더니, 정말 놀라운 게 평생 2개 국어를 사용한 그룹과 영어만 쓰는 그룹은 치매 발생시기가 4.8년 정도 차이 났다. 2개 국어를 하면 5년 정도 뒤늦게 치매가 발생한 거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를 쓰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인도에서도 똑같은 조사를 했는데 힌두어만 쓰는 사람보다 영어를 함께 쓰는 사람이 치매 발생시기가 4.5년 정도 늦었다. 그래서 강연에 다닐 때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지금 이 나이에 배워도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시는데, 외국어는 늦게 배울수록 뇌에 더 좋다. 아주 어려서 자기 모국어가 굳기 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언어 영역이 한 군데 붙어 있다. 그런데 모국어가 굳어진 후 성인이 돼 외국어를 배우면 언어 중추가 떨어져 있어 새로운 뇌 영역이 자극된다.”

틈날 때마다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 이사장은 지금도 여러 외국어를 공부하는 등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도 그런(치매 예방) 필요성이 있고요. 또 하나는 유럽, 특히 프랑스나 이탈리아·스페인, 이런 데서 국제학회를 하게 되면 사실 영어가 공용어로 통하긴 하지만, 시골이나 시장 같은 데 가서 그 나라 말을 좀 알아서 이야기해 보면 굉장히 정감 있고 재미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학회가 있다고 하면 학회 날짜는 1년 전에 정해지니까 가기 6개월 전부터 그 나라 말을 리마인드해서 회화공부를 해보고 간다. 영어는 어려서부터 했으니까. 프랑스어하고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지금까지 배우고 있다. 또 우리 병원에 중국인 환자가 많고, 중국 진출도 있을 것 같아서 최근에는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치매 예방에 좋은 음식은 뭐가 있나.

“제가 그런 책을 좀 썼는데, 불포화지방산이 제일 중요하다. 제철 과일과 채소·견과류, 이런 것들이 좋다. 세계적인 장수지역으로 이름난 일본 오키나와(沖繩)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마린다, 그리스·이탈리아의 섬들을 보면 먹는 음식들이 굉장히 독특하다. 특히 지중해 연안 사람들이 먹는 건 올리브유, 등푸른생선, 통밀·귀리 같은 정제되지 않은 곡식들, 과일과 채소, 적당량의 적포도주 등인데, 이런 것들이 심장병과 뇌졸중, 치매 발생을 많이 낮추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명한 ‘지중해 식단’이란 건데, 제철 과일에는 폴리페놀, 안토시아닌같이 항산화 효과를 내는 성분이 있다. 생선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은데 그게 혈관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인자다. 특히 등푸른생선에 들어 있는 오메가3는 항산화·항염증 효과가 탁월하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메가3 약을 먹으려 하는데 그건 생선을 구하기 어려울 때 얘기고, 약보다 음식을 중시해야 한다. 등푸른생선에 양질의 단백질, 비타민, 무기염류 같은 게 들어 있으니 약보다 좋다.”

―과음은 치매에 좋지 않다고 했는데, 적포도주가 좋다는 건 뭔가.

“그게 상당히 모순돼 보이는데, 미국에서 돌아와 신경세포 보호물질을 연구하다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을 문헌상에서 발견했다. 보니까 적포도주 주성분이더라. 그래서 논문을 많이 찾아봤는데, ‘프랑스의 역설’,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게 있더라. 특히 프랑스 보르도 지역 사람들이 치즈, 돼지고기 등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데도 미국 사람보다 심장병, 뇌졸중 위험이 적다. 왜 그런가 보니까 먹는 음식은 다 비슷한데 딱 하나 프랑스인들이 적포도주를 즐겨 마시고 있다는 거다. 더 재밌는 건 똑같은 프랑스 사람인데 백포도주를 마시는 독일 접경 알자스 쪽은 심장병, 뇌졸중이 많다. 음식 문화는 같은데 한 가지 다른 건 포도주다. 그래서 최근에는 적포도주가 왜, 어떤 과학적 근거에 의해 뇌세포, 신경세포, 심혈관계 세포들을 보호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동물한테 생명연장 유전자란 게 있는데, 레스베라트롤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강력하게 생명연장 유전자를 활성화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적포도주 적당량을 오래 마시면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적포도주도 많이 마시면 안 좋겠지.

“그게 유명한 ‘J형 커브’다. 세로축이 심장병·치매 발병률, 가로축이 음주량인데, 적포도주를 아예 안 마시는 사람이 오히려 적당히 마시는 사람보다 위험하다는 거다. 적당량이란 게 개인차가 있는데, 보통 포도주잔으로 하루 한 잔 또는 두 잔을 말한다. 가득 채우는 게 아니라, 밑에서 약 3분의 1인 한 잔이다. 그렇게 매일 한두 잔 마시는 사람이 아예 안 마시는 사람보다 건강하다고 한다.”

이쯤하고 오늘의 치매 전문가 한설희를 있게 한 과거로 들어가 봤다. 그는 왜 불모지나 다름없던 치매 연구를 선택한 걸까.

―우리나라에서 치매 연구를 거의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봐도 되나.

“의과대 학생 때 우리나라에는 알츠하이머가 없다고 교수님들께 배웠다. 그런데 전임강사 시절에 아주 친한 재일교포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일본에서 신경학을 전공하는 친구를 소개해 줬다. 그 사람이 ‘혹시 너희는 치매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고 묻더라. 그때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도 아니었고, 치매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일본을 봐라. 세계 최고령국가가 되면서 치매가 문제가 됐다. 틀림없이 한국도 문제가 될 테니 미리 준비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1992년에 신경외과 의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듀크대에 가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때 연구한 게 지금으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사람들이 별로 믿지 않았다. 아포지질 단백질이란 게 있는데, 그게 알츠하이머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라는 걸 밝혀냈다. 그 이론을 지금도 아무도 깨지 못한다. 그게 어떻게 보면 운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그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에 연구팀에 참여해 기초연구를 했는데, 그때 동물실험을 처음 배웠다. 아포지질 단백질과 알츠하이머의 연관성 연구가 시작될 때니 2년 동안 논문 10편을 쓸 수 있었다.”

―그 후 귀국해 치매연구학회를 만들어 키웠나.

“한국에 돌아와 조금 있으니 치매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저 이후에 3∼4명이 미국의 알츠하이머병연구소에 다녀왔다. 지금 삼성서울병원에 있는 나덕렬 교수와 이대목동병원의 최경규 교수, 또 당시 가톨릭대 교수로 있었던 양귀화 교수 등 몇 사람이 모여 ‘우리나라도 앞으로 치매가 문제가 될 테니 같이 토론하고 연구모임을 가져보자’고 해서 ‘치매연구회’라는 걸 1996년부터 시작해 2002년도까지 6년 동안 했다.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회장을 한 거다. 매월 정기모임을 열었는데, 나중에 전공의나 전임의들도 와서 학술적으로 진행되니 ‘연구회 가지고는 안 되겠고 정식 학술단체를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2002년에 대한치매학회를 정식 발족했다. 그때는 회원이 150명 정도 됐다. 학회지, 학술지를 만들고 교과서도 만들었다. 지금은 2000명 가까이 되는 큰 학회가 됐다.”

―치매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게 있나.

“우선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와 세포나 실험동물을 이용하는 기초연구를 진행 중이다.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시행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기초연구로는 아밀로이드의 신경세포 독성에 관여하는 인자들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약물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발병 기전(機轉) 측면에서 보면 알츠하이머병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및 자폐증에 유사성이 많아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년을 맞기 위한 소위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뇌 노화를 억제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도 개발하고 있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최근에 발표한 건데, 레스베라트롤과 멜라토닌이라는 수면 호르몬이 있다. 멜라토닌은 강력한 항산화 물질 중 하나다. 이 둘을 각각 아주 소량을 쓰면 신경세포 보호 효과가 없는데, 두 개를 합쳐 놨더니 효과가 확 올라갔다. 그래서 멜라토닌과 레스베라트롤을 적당히 섞은 약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해에 쥐 수면박탈 실험을 했는데, 72시간 정도 잠을 못 자게 하면 나중에 충분한 잠을 자더라도 쥐는 바보가 되더라. 뇌에 염증이 많이 생겨 바보가 됐다. 한데 똑같이 잠을 안 재워도 멜라토닌을 먹이면서 하면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게 왜 중요하냐면, 적포도주에 멜라토닌도 레스베라트롤과 함께 들어 있다. 포도주를 마시면 잠이 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또 하나는, 세계적인 제약회사들과 함께 새로운 치매 치료제 임상연구를 하고 있다. 뇌 속에 조금씩 쌓여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이상 단백질, 아밀로이드를 미리 감지해서 제거하는 약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 환자가 늘면서 사회문제화도 예상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질병 가운데에는 암, 심장병, 뇌졸중이 있는데 이 질환들은 안정기에 접어들면 보호자의 도움 없이도 하루 수시간 정도는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진행된 치매 환자의 경우 잠시도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건강한 사람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 데 묶여 있어 경제적 부담이 수반된다. 그 외 진행된 치매 환자의 경우 환각, 망상, 과격한 행동이 흔히 동반되며 약물 복용에서부터 식사 수발, 화장실 사용 등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줘야 하므로 보호자의 심리적·신체적 부담이 가중된다.”

―의학적 치료도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점이 있다면.

“치매는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계속 진행된다. 따라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매우 좋은 정책이지만 일부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등 도움이 편중돼 있다. 현재와는 달리 앞으로는 (출산율 저하에 따라) 노인 인구를 돌보는 부양자 수의 급격한 감소가 예상되므로 치매 가족의 부양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치매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돼 민관이 책임을 공유하는 확고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병원장인데, 병원 경영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던 시절에는 의료인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존경을 받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수한 실력을 갖춘 의사가 최선의 치료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 환자 관리와 편의사항에 대해서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쟁해야 하는 ‘의료 서비스’의 시대가 됐다. 따라서 시대가 요구하는 의료인이 되기 위해 최신 의학 지식과 신기술 습득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나 초심으로 돌아가 전 직원에게 ‘병원을 찾는 모든 이들이 내 가족이다’고 생각하며 진료 업무에 임하기를 독려하고 있다.”

인터뷰 = 김세동 차장 (사회부) sdg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