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대상·내용도 없고 기업 이득의 근거도 없어”
“금액 정해놓고 기부 강요 이번 합의는 완전한 편법”
“기업활동 위축시키는 내용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어”

여야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통과시키면서 농어촌을 지원하는 용도로 기업들로부터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 원의 ‘농어업 상생기금’(가칭)을 기부금 형식으로 걷기로 한 것은 헌법을 거스르는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법적 근거 없이 시행하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무역이득공유제’의 변형된 형태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1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농어업’이라 하면 대상이 누구인지, 얼마나 피해를 보는 이들에 대한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기업이 얼마나 이득을 얻는지에 대한 근거도 없다”며 “위헌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발적으로 기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목표에 의해서 강요당하는 세금”이라며 “법인세를 합법적으로 늘려서 수출하는 기업에 세금을 걷는 것이 맞지, 이번 합의는 완전히 편법”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법률적 근거 없는 사실상의 준조세 조성이 갖는 위헌성과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상생기금은 사실상 기업에 준조세 형식으로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법적 근거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정부는 국민과 기업에 경제적 부담을 주는 각종 불합리한 준조세를 정비하고 부담금의 신설을 억제하기 위해 2002년 1월부터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시행하고 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아무리 FTA 등을 통해 기업이 수익을 얻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더라도, 기업으로부터 기대 이익을 가지고 발전기금을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역시 “상생기금이 법률로 할지 한·중 FTA 부대조건으로 넣을지 어떻게 결정됐는지 모르지만, 후자라면 법률에 근거로 하지 않고 돈을 걷는 것이니 위헌 가능성이 있다”면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기금 조성은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느 기업은 얼마를 내고, 분배할 때 어느 농촌은 얼마를 받고 등등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1조 원에 대한 정확한 사용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업 등 민간으로부터 돈을 걷는 것은 세금(준조세)과 기부금인데 세금의 경우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라 조세의 목적과 징수 방법 등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 또 기부금이라고 규정할 경우에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금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추어야만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기부금품 조성은 어떤 것이든 불법이며 위헌 소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반면에 상생기금 조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생기금이 부대조건으로 간다면 강제성이 없는 것이고 아직 위헌성을 따지기 힘들다”며 “한쪽에 일방적인 특혜를 준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위헌성이 있는 것이냐도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우리 헌법에는 공유에 대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따라 합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정아·손우성 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