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재벌 3세의 빗나간 ‘갑질’을 다뤄 화제를 모았던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기업인의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 기업인들의 모습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때
국적 정체성 의문 외치며
느닷없이 “제품 사지말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美 투기자본 편에 서기도

경영권 보호‘포이즌필’ 등
제도 합리성 따지지 않고
“사익 추구” 단순 반대논리

“자본=착취, 노동=피착취
구시대 사고방식 못버려
시대 맞게 생각 바꿔야”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정경유착이나 분식회계 등 폐해를 비판해왔지만, 이런 관행들이 대부분 해소된 상황에서도 관성적으로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선동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반기업적 활동은 주로 ‘반대기업’, ‘반재벌’,‘반부(富) 정서’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이나 유럽의 시민단체들이 환경 등 사안별로 문제기업들을 공격하는 것과는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정치적 이념이나, 소득 격차 등을 배경으로 이분법적인 인식에서 기업을 무조건 적대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좌파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총 10개 분야 37개에 달하는 입법·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대기업의 복합쇼핑몰 진출 규제, 재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 등 이른바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들이 핵심이다.

이들 시민단체는 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 모든 문제가 재벌개혁을 하지 못해 발생한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최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그룹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상황은 이들 좌파 시민단체에 재벌개혁과 반기업 정서 확산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됐다. 기회를 놓칠세라 본질과 관계없는 엉뚱한 ‘불매운동’도 일어났다. 롯데의 국적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일감정과 연계해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불매운동의 명목도 시장경제와 소상공인, 자영업자 서민피해 개선이었다.

시민단체들은 미국계 투기자본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을 때도 총수 일가 3세들의 지배권 승계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계 투기자본의 편에 서기도 했다.

이와 관련,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차등의결권 제도나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등 경영보호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제도적 합리성을 따지기보다는 “소수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에 악용될 수 있다”는 단순한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이처럼 반기업 정서를 계속 부추기고 있는 것은 자본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과, 자본과 노동을 착취와 피착취로 대립시키는 ‘철 지난’ 사고방식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냉전과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 탓에 자본과 노동을 착취와 피착취로 나누는 사고방식이 시민단체 등 일부에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시대 변화에 맞게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직도 자본가와 기업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시민단체들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들과 논쟁을 계속 벌여나가는 한편으로 공공교육 과정에서부터 올바른 자본주의 교육이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