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정치적 입맛에 맞춰 국가정보 해석해선 안돼”
“기술적 이해도 없으면 쉽게 왜곡 가능성 높아”
의혹 보다 국익이 우선 무차별 폭로전에 우려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 및 불법 감청 의혹이 정치 쟁점으로 확산되면서 이 문제는 국가 안보와 불법 감청 문제로 분리해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익을 우선하지 않은 채 무차별적 폭로와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전개될 경우 국정원의 대북 정보전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혹에 관한 조사와 그에 따른 책임은 분명히 하되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하는 보안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20일 문화일보와 전화통화에서 “국가 안보에 관한 문제가 너무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며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좋지만 미리부터 큰 의혹사건처럼 몰고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분열을 일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정보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호(정치미디어학) 대전대 교수는 “해당 프로그램 사용 등에 관한 것은 상당히 기술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기술적 이해도가 높지 않으면 쉽게 왜곡될 수 있다”면서 “정보위원회 등 특정 선에서 국정원의 잘잘못을 따지면서도 외부로 내용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국정원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와 사이버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 전략과 확보한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꼴”이라면서 “국가정보원법 등 현재 법 제도에서도 중대한 안보 자료를 비공개하도록 돼 있고, 외국의 경우도 안보 정보 공개는 반역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환(외교안보학)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안보적으로 중대한 요소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다 공개해 그걸 국민에게 일일이 판단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특히 외국 국적을 가진 이들에 대한 활동이 모두 공개되면 외교적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아전인수식’의 해석이나 축소·확대를 모두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내영(정치외교학) 고려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증거를 가지고 따져야지 추측으로 부풀리려 하거나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국정원은 국가의 중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그 정보를 여당과 야당이 정치적 입맛에 맞춰 해석해선 안 된다”며 “여야 입장 차를 떠나 정보위 차원에서 책임을 갖고 구체적인 사안을 비공개로 확인해 공동의 의견을 내고 정리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종·유현진·손우성 기자 hiromat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