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유서 19일 경찰이 공개한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 씨의 유서. 연합뉴스

영장 받아도 기술적 한계
산업스파이 등 대응 어려워
美·英·獨 등 감청 법제화

국내에 사이버안보 기본법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 산업스파이에 노출되고, 반드시 필요한 안보 활동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둘러싼 논란 자체가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국가안보 활동의 합법화를 위한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는 2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통신감청지원법(CALEA), 일본은 통신감청법, 영국은 수사권 규율법, 독일은 전기통신법 등으로 통신업체의 감청설비 협조 의무를 법제화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사이버안보에 대한 기본법도 없고,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은 개정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합방위법에도 사이버 영역이 빠져있고, 관련 시행령도 없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모든 것에 인권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사이버안보 역량이 무너지고 국가안보를 위한 첩보 활동도 못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이버안보 관련 기본법이 마련돼있지 않은 데다가, 통신업체가 휴대전화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현행법에서 휴대전화 감청은 허용하고 있지만, 이동통신사가 관련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아 실제 감청이 불가능하다.

전옥현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휴대전화 기술은 세계 최고지만, 관련 안보법은 없다”면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가담한 피의자도 법원의 감청 승인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해 증거 확보가 어려웠고, 북한 간첩이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한 사실을 알고 휴대전화로 북한의 지령을 수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논란에 신중히 접근하는 한편, 국제 사이버전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안보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날 국정원 직원 일동으로 낸 성명서에서는 “이탈리아 해킹팀 업체로부터 35개국 97개 기관이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모두 ‘노코멘트’ 한마디로 대응하고 이 대응이 논란 없이 받아들여졌다”면서 “자국 정보기관을 매도하기 위해 근거 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유현진·정충신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