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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발간 종목 리포트 6377개중
매수 의견 6113개로 ‘절대적’
매도 의견은 단 1개 ‘천양지차’

거래 기업들 압박·횡포 두려워
애널리스트들 과감한 의견 못내
매도 의견 내면 출입금지 시켜

지난해 4월 회사원 김모(35) 씨는 A증권사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B사에 대해 작성한 종목 분석 리포트 등을 참고해 B사에 1000만 원 상당의 돈을 투자했다.

당시 A증권사가 작성한 리포트는 ‘자회사 상장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기대, 중국 내수 효과’ 등을 언급하며 B사의 1년 후 목표주가로 38만 원을 제시했다. 이는 당시 주가인 31만3000원과 비교해 21.4%나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B사의 주가는 25만 원대로 떨어졌고 김 씨는 200만 원 상당의 손해를 봐야 했다.

김 씨는 “당시 A사의 리포트뿐만 아니라 다른 증권사가 작성한 리포트들도 다수 참고했는데 모두 ‘사라’는 의견 일색이었다”며 “최근에도 온통 ‘매수하라’는 의견뿐인데 이제는 아예 거짓말 같아서 들여다보지도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저금리 여파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자금이 대거 국내 증시로 몰려들고 있는 가운데 ‘사라’고 권유하는 이른바 ‘장밋빛 리포트’만을 쏟아내는 증권사들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이런 고질적 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3일 문화일보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증권사 기업 분석 리포트를 조사한 결과 지난 2012년 발간된 2만5958개의 리포트 중 해당 종목을 살 것을 권유하는 ‘매수’ 의견 리포트는 2만1349개로 전체의 82.25%에 달했다.

사실상 종목 분석 보고서 10개 중 8개 이상이 해당 종목을 ‘사라’고 권유한 것이다. 반면 ‘중립’은 1608개로 6.19%를 차지했으며 ‘매도’ 의견은 고작 1개(0.003%)에 불과했다.

지난 2013년에는 ‘매수’ 의견 리포트가 전체의 78.86%에 달했고 ‘매도’ 의견 리포트는 1개(0.003%)에 그쳤다. 또 지난해에도 ‘매수’ 의견은 80.3%에 달했지만 ‘매도’ 의견은 겨우 0.04%(10개)를 차지했다.

이런 흐름은 증시가 급등하고 있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까지 증권사 발간 종목 리포트 6377개 중 ‘매도’ 의견 리포트는 단 1개(0.02%)에 불과했다. ‘비중축소’ 의견도 4개(0.06%)에 그쳤으며 ‘중립’은 549개(8.61%)였다. 반면 ‘매수’ 의견은 6113개(80.18%)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이 같은 ‘매수’ 의견 일색의 리포트 발간 행태는 외국계 증권사와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로 지난 2월 금융감독원이 지난해(1∼11월까지) 외국계 증권사 19곳이 발간한 리포트 6420개를 분석한 결과 ‘매도’ 의견을 낸 리포트는 897개로 전체의 13.97%를 차지했다. 사실상 ‘매도’ 의견 리포트 비율이 0%대에 그치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보유 주식을 팔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 비중은 2011년에는 7.92%(512개)를 차지했으며, 2012년과 2013년에는 각각 10.68%(691개), 13.10%(802개) 수준이었다.

이처럼 국내 증권사들이 ‘장밋빛’ 일색의 리포트를 내놓는 배경에는 증권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과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관계가 ‘갑과 을’인 상황에서 애널리스트들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과감하게 ‘매도’ 의견 리포트를 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가 거래하고 있는 자산운용사에서 보유한 종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운용사가 거래 증권사를 바로 옮겨버리기도 한다”며 “리포트 대상 기업이 매도 의견을 낸 연구원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처럼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증권업계 내부적으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3월 한 행사에서 “(증권사들이) 매도 리포트를 내면 기업이 애널리스트나 기업금융(IB) 쪽에 전화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는 한다”며 “애널리스트가 과감하게 매도 리포트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의 이 같은 발언과 함께 금투협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모든 증권사를 대상으로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도를 오는 5월 29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투자의견을 매수, 중립(보유), 매도 등 3단계로 구분해 표시해야 하며 투자의견이 포함된 리포트에 자사의 투자의견 비율을 기재해야 한다.

증권사들은 자체적으로 투자의견에 ‘시장수익률 상회’, ‘비중축소’ 등의 용어를 쓰더라도 매수, 중립, 매도를 함께 명시해야 한다.

금투협은 홈페이지에 전 증권사별 최근 1년간 투자의견 비율을 종합해 공시하고 이를 분기마다 갱신할 예정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의 수익 전망치 등을 보다 정교하기 분석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매도 리포트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