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완구 국무총리가 15일 오전 국회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앞서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잡았으나 정 의장이 고개를 돌린 채 의장석으로 향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4국 순방(16∼27일)을 앞두고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사퇴 요구가 확산되면서 국정 공백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권력서열 1위인 대통령의 유고 시 그 직무를 대행해야 할 이 총리가 사실상 ‘식물 총리’로 전락, 초유의 국정 공백 사태를 맞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다. 급기야 여당 내에서조차 이 총리를 향해 ‘거취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16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이 없는 동안 직무 대행자가 있어야 하는데, 총리가 부패 문제로 수사를 받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그 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이 의원은 이 총리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이럴 때를 대비해 부총리를 두 명 두지 않았느냐”며 “부총리가 총리 대행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박근혜 대통령이 육성으로 ‘나와 관련된 가까운 사람, 비서실장 세 사람이나 부패에 관련돼 있다고 하니 유감이다’ 정도의 이야기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대통령 유고 시 직무대행을 총리가 아닌 부총리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 같은 주장은 현재와 같은 어정쩡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장기 해외출장에 나설 경우 국정이 난맥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다. 이 총리는 사실상 ‘식물 총리’가 됐고, 영(令)이 서지 않게 된 총리에게 대통령의 직무대행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부총리가 직무대행을 맡도록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순방 기간 동안 이 총리가 검찰에 불려나가 수사를 받을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당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이 총리가 사퇴하지 않는 한 국정 공백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안보 등 주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식물 총리’가 과연 주도권을 갖고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이 총리에게 3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주장들이 이어지고, 이 총리의 해명 중 일부가 거짓으로 드러나는 등 이미 이 총리는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총리가 1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례적으로 모두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 군색해진 처지를 확인시켜 준 것으로 해석됐다.

국가 의전서열 상 총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에 이어 5위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헌법상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하는 국정 2인자다. 총리마저 유고 상태가 된다면 국가 의전서열 12위에 해당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무대행을 해야 한다.

오남석·민병기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