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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쁜 사랑’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랑이 있다. 딱 한 번 본 첫 느낌으로 깊은 사랑에 빠져든 남녀가 있다. 여기까지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화 ‘나쁜 사랑’(사진)에서는 이렇게 만난 남녀를 또 다른 운명이 방해하고, 순수하게 시작된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프랑스 리옹으로 출장을 갔다 막차를 놓친 세무조사원 마크(브누아 포엘부르드)는 기차역 앞 카페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실비(샤를로트 갱스부르)와 마주친다. 첫눈에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 두 사람은 이름도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채 파리 한 공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운명은 그들 편이 아니었다. 공원에서 마크를 기다리던 실비는 마크가 오지 않자 슬픔에 빠져 그 자리를 떠나고, 돌발적인 상황에 휩쓸린 마크는 뒤늦게 공원을 헤맨다.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실비와 우애가 깊은 동생 소피(키아라 마스트로얀니)를 마크와 만나게 해 새로운 사랑으로 엮는다. 소피와의 결혼을 앞두고 소피의 집을 처음 방문한 마크는 계단 벽에 걸린 실비의 사진을 발견하고, 고뇌에 빠진다. 결혼식 후 극적으로 재회한 실비와 마크는 괴로워하면서도 열정에 휩싸여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다 헤어진 후 그를 동생의 남편으로 다시 만난다는 설정은 ‘막장’ 스토리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선정적인 제목이 붙어 그 느낌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꼬인 운명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세 사람의 처절한 심리에 집중했다. 원제인 ‘스리 허츠’(3 HEARTS)가 영화의 분위기를 잘 전한다. 여기에 그런 상황을 직감하고도 어느 딸 편도 들 수 없어 내색도 못한 채 마음 아파하는 엄마(카트린 드뇌브)의 복잡한 감정이 더해진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의 열연이 영화의 맛을 잘 살려냈다. 여기에 드문드문 나오는 묵직한 목소리의 내레이션과 비장하게 흐르는 음악이 비극적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프랑스 멜로의 거장인 브누아 자코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이 ‘나쁜’ 게 아니라 운명이 나쁘다는 것을 강조한다.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