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광화 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충정로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여성 과학자의 역할과 독창적인 연구장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정광화 원장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문과보다는 이과 공부가 자신의 성향에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주장하는 진리’가 아니라 ‘증명될 수 있는 진리’를 좋아해서 인문학 강연을 들을 때조차도 강연자가 확신을 갖고 얘기하더라도 “이게 과연 사실이냐”는 식으로 비판적으로 듣게 되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주장하는 얘기보다는 전문가가 과학적 근거와 전문적 지식을 갖고 하는 주장을 더 신뢰한다고 했다.

정 원장이 과학자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부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방사성동위원소 라듐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과학자 마리 퀴리이다.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라듐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이후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받는 등 두 번의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유일한 여성 과학자인 퀴리 부인은 평생을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과학자로서의 소명과 소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다른 과학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라듐 제조방법을 개발했으나 특허를 내지 않았다.

한번은 모 잡지 여기자로부터 라듐의 특허를 내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원소는 만인의 것이며 그 누구도 라듐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라듐 1g의 가치는 10만 달러였다고 한다. 정 원장은 이 일화를 소개하며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고 발견하기 위해 존재하는 과학자로서 천직인 과학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세상을 이어주는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한 팀 버너스리가 특허를 걸어두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텐데, 특허기술에 대한 권리보호 없이 모두 대중에게 공개한 것도 인류와 과학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했다.

정 원장은 내년 2월이면 임기를 마친다. 현재로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남편처럼 물리학에 관한 저술활동을 하고 싶어한다. 시중에 과학이나 물리학을 다룬 저서들이 많이 나와 있긴 하지만 불교나 신비주의 등으로 뒤범벅돼 대중을 호도하는 책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따라서 진정으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짚어줄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한다고 했다.

정 원장은 정책 당국에 대해 “과학자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유용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될 때 보상심리를 느끼는 것처럼 과학자들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박양수 기자 ys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