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개헌할 필요가 없다. 지금 내각 구조가 사실상 의원내각제다.”

개헌 반대파인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이 최근 국회의원들의 연이은 입각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 내각에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에 이어 이완구 국무총리까지 17일 국무회의 석상에 앉게 됐다. 박근혜정부 내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잇는 서열 2∼4위이자 삼두마차로 불리는 총리와 부총리 3인이 모두 현역 국회의원이다.

17일 단행될 예정인 해양수산부 장관에는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 국토교통부 장관에는 유일호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한때 통일부 장관에 윤상현 의원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들까지 입각하면 현역 국회의원인 총리·장관은 6∼7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현재 박근혜정부의 총리·장관은 18명으로 그중 3분의 1이 현역 정치인인 셈이다.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중심제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여러 요소에서 의원내각제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특히 헌법 조문엔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직할 수 없다’는 명시적 금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의원과 장관의 겸직이 열려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장관 출신인 한 현역 의원은 “국회의원은 정통 공무원 출신 장관에 비해 현실 감각이 탁월하고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통해 창의적인 행정이 가능하다”고 겸직 찬성론을 밝혔다. 박 대통령이 임기 중반 국회의원의 입각을 잇달아 시도하는 이유는 인사청문회에 대한 공포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비교적 ‘자기 관리’를 잘해 온 의원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여지가 더 많다”고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월 23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후보자로 지명되자 “대통령께서 총리를 당에서 발탁해주신 것에 대해서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어차피 총리는 정무직이기 때문에 정치를 잘 아는 분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과도한 입각은 자칫 대통령중심제 하의 삼권분립 정신을 놓고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들이 의원들 간 깊은 친분을 바탕으로 대국회 활동에 나설 경우 날카로운 견제보다는 동업자 정신이 발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기 국회의원 총선거는 당장 내년 4월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엇비슷한 시기에 장관직을 던질 경우 박근혜정부가 한 차례 크게 출렁일 수 있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현재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장관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대통령의 힘을 더욱 키우는 길”이라며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도 맞지 않고, 차라리 이럴 바에야 의원내각제를 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