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전화 통해 현안 챙기지만
1대1 대면보고와 질적 차이”
前·現고위직 이구동성 토로

靑방문 기념품 ‘박근혜 시계’
상가 보낼 ‘대통령 조화’까지
대통령 재가 사항 소문 무성

“열심히 하는 건 ‘과거 리더십’
소통하는 ‘관계 리더십’으로
朴, 스타일 바꿔야 위기 돌파”

지난해까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으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재임 중 소위 ‘박근혜 시계’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고 한다. 주요 법안들의 조속한 처리를 부탁하고 민원사항도 청취할 겸 국회를 방문하려 했는데 여당 측에서 “기왕이면 여야 의원들을 만날 때 대통령 시계를 기념품으로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박근혜 시계’란 청와대를 방문해 박 대통령을 면담한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받는 시계로, 손목형과 벽걸이형 등 두 가지가 있다. 문자판에 청와대 로고가 새겨진 ‘청와대 시계’와 달리 이 시계에는 박 대통령 친필로 ‘박근혜’라고 쓰여 있다. 고가의 제품도 아닌 그야말로 기념품이고 수령자가 여야 의원들인 만큼 문제의 전직 수석은 여당 의원에게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전직 수석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윗선에서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 해프닝은 이후 세세한 것까지 직접 다 챙기는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을 비판할 때마다 회자되곤 했다. 최근 청와대가 대통령의 조화(弔花)를 보낼 때도 대통령 결재를 받는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 23일 국무총리 교체 및 청와대 조직 개편 등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박 대통령이 이런 만기친람 리더십과 같은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과 향후 대책 모두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2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당의 지지율은 그대로인데 대통령 지지율만 무너지고 있는 것은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표출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상황이 당장 나아질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박 대통령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자신의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만기친람 리더십, 그로 인한 소통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내부’에서도 나온다. 1년 넘게 청와대 수석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임 기간 중 소수의 인원이 함께 보고한 적은 있어도 대통령과 독대는 거의 못해봤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대통령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 현안을 챙기지만, 전화 통화나 보고서를 통해 이뤄지는 보고는 일대일 대면보고와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 현직 국무위원도 “밖에서는 몰랐는데 대통령을 독대하는 것은 정말 어렵더라”면서 “국무회의에서도 할 말을 막는 건 아니지만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 독대를 신청했다가 수차례 거절당했다는 게 과장된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양승함(정치외교학) 연세대 교수는 “박 대통령은 자신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는 이미 용도 폐기된 과거의 리더십”이라며 “이제는 소통하며 함께 일하는 ‘관계의 리더십’ 시대”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과 국정 운영 성과가 안 나오는 것은 다 같은 이유 때문”이라면서 “지시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소통하는 리더십으로 전환해 장관과 참모들이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