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김연아 기자 yuna@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산업스파이들의 집중표적이 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만큼 빼내 갈 첨단·고급 기술이 많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는 것까지는 좋지만 결과를 보면 역설적이다. 건드려보는 ‘먹잇감’에 그치지 않고 실제 기밀 유출의 피해를 입은 사례가 많다는 점은 기술적·제도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음을 방증한다. 기술 보안, 사이버 보안 측면에서는 최첨단이 아니라는 의미다.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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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그동안 연구·개발(R&D)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소재·부품·장비·조립 등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자동차·스마트폰 등 분야에서 세계시장 1∼5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변 경쟁국 기업들은 이러한 한국 산업발전에 주목하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산업스파이와 정보기관까지 동원한다. 한국의 산업정보·기술, 금융·경제정보, 경영전략, 방산·원전 등 해외 대형사업 입찰정보 등을 무차별 수집하고 있다는 게 국가정보원 등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처럼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산업기밀이 유출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창무(산업보안학) 중앙대 교수는 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특히 보안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경우 기밀이 유출된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최근 발생한 한국수력원자력 해킹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기밀 유출 사건은 언론에 보도돼야 알게 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스파이 범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는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첨단기술을 연구·개발하는 데는 많은 인력과 자금 및 시간이 소요되지만 산업스파이가 기술을 빼내 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점에서 ‘효율성’은 최고다. 이미 연구·개발에 성공한 결과물을 가져오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도 없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기술 유출이 대량화·신속화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최근 기술유출 사건은 보안 우회 및 화이트칼라 범죄 등 지능화·첨단화되고 있고 인터넷 해킹·대용량 이동식저장장치(USB)·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IT 발달로 대량화·신속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유출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인 점은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국정원이 최근 5년간 적발한 210건의 기술유출 사건 가운데 64건이 국가핵심기술 및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개발된 중요 기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4건은 반도체·조선 등 한국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다른 나라 후발업체의 기술 추격이 심화된 분야에 집중됐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분야별 유출 대상 기술은 전기·전자 35%, 기계 31%, 정보통신 12%, 화학 6%, 생명공학 3%, 기타 1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기·전자와 기계 분야가 절반 이상(66%)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 유출을 위해 동원되는 수법은 전천후적이고 갈수록 기상천외하다. 산업스파이뿐만 아니라 해외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과 인력매수 및 스카우트, 해외체류 자국인 포섭 등 합법·비합법적 방법을 불문하고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양상이다.

특히 국내 업체의 해외 매각은 이른바 ‘기술 먹튀’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휴대전화업계에서는 현재 휴대전화 3위 업체인 팬택의 해외 매각에 따른 기술 유출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팬택이 가진 국내외 기술 특허는 35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국내 최대이자 세계 2위 자동차용 공기조절(공조)장치 제조사인 한라비스테온공조의 매각을 놓고도 첨단기술의 중국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공조기술은 친환경 차 기술 개발의 핵심 분야로 꼽힌다. 한라비스테온공조가 최근 전기차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신기술까지 내놓은 바 있어 기술 유출 시 큰 타격이 예상된다.

경쟁업체 간 제휴과정에서 인력 빼가기도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된다. 세계 최대 보안업체 시만텍 출신 직원들이 국내 중소기업의 핵심 인력과 기술을 빼돌린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이 그 대표적 예다. 검찰에 기소된 시만텍 직원들은 국내 원격 PC 점검 업체인 오투씨앤아이에 근무하다가 2011년 시만텍으로 이직하면서 전직 회사의 영업비밀 자료를 부정 유출 및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투씨앤아이는 2007년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시만텍과 협력했는데, 원격 점검 기술을 높게 평가한 시만텍이 자사의 핵심 인력들을 영입해 기술을 도용한 혐의다. 그러나 미국 시만텍은 한국법인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방승배·김병채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