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제 안받아 ‘그림자 월급’
노조 반발 우려돼 폐지 유야무야

공공기관 가운데 상당수가 예산 통제를 받지 않는 빈틈을 이용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경조비·학자금 등에 변칙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전체 303개 공공기관의 30.69%인 93개 기관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공기업 30개 중 28개, 준정부기관 87개 중 41개, 기타 공공기관 185개 중 24개가 도입했다. 정부는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해 공공기관 세전 순익의 5%를 기준으로 출연금액을 정하되, 직원 1인당 출연 규모와 유사·동종 민간기업의 출연 수준을 고려하도록 정했다.

하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정부의 예산 통제를 받지 않아 ‘그림자 월급’이라고도 불린다. 기금을 활용하기 때문에 근로소득에 대한 소득세를 낼 필요도 없고 급여성 복리후생비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생활안정자금과 주택자금·경조비·학자금·의료비 지원이 가장 일반적이다. 또 선택적 복지제도라는 이름으로 동호회 활동지원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금이 없다면 모두 월급으로 해결해야 할 항목들이다.

공공기관들은 그동안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변칙 운용하다 감사원에 적발돼 도마 위에 올랐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2012년에 실적 악화로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이전보다 적은 예산을 출연하게 되자 7억 원어치의 태블릿PC와 10억 원어치의 디지털카메라를 전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식으로 부족분을 보상하기도 했다. 또 한국마사회는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의무교육 대상인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가 있는 직원들에게 사교육비로 쓸 수 있는 학자금 명목으로 1인당 월 20만∼25만 원 한도로 지급했다. 사실상 회사가 직원 자녀의 학원비 등 사교육비까지 지원해준 셈이다.

특히 강원랜드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편법적인 임금 인상의 수단으로 쓰다가 적발됐다. 강원랜드는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는 대신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전 직원에게 복지카드 1인당 370만 원과 직장 신협 출자금 1인당 15만 원을 지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예산에 얽매인 임금 인상을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메우는 등 도덕적 해이가 빈번했다”며 “한때 정부가 폐지까지 검토했지만 기금의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주장과 함께 노조의 반발도 우려돼 출연율을 제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박민철 기자 mindo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