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여야 지도부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대표·이완구 원내대표·주호영 정책위의장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우윤근 원내대표·백재현 정책위의장이 참석했다.

의제에 대한 사전 조율이 없었던 만큼 대화는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허심탄회하게 40여 분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와 공식적으로 마주한 것은 지난 7월 10일 박영선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등과 만난 이후 111일 만의 일이다. 이날 회동의 큰 주제는 예산안 처리와 관련된 것이었지만 대화는 각종 국가개혁 과제와 총체적인 민생 및 민심의 흐름, 청와대와 국회의 소통 문제 등으로 폭넓게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우선 경제의 골든타임론을 강조하면서 국회와 정치권이 새해 예산안을 잘 처리해줄 것을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재정적자 예산 편성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균형재정 노력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재정을 확대하기 위한 게 아니라 (경제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동은 전날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공동 발의한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조를 맞추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개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개혁 추진의 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정기국회에서 박근혜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국정 과제 관련 입법과 예산안 처리를 위한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 지도부도 이날 박 대통령이 매년 국회로 직접 와서 시정연설을 하기로 한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문 위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소통이 약’이라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박 대통령이 2년 연속 국회로 와 시정연설을 하고,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을 빨리 잡은 것은 잘하신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 위원장은 “소통 기회가 많을수록 좋고, 여야 함께도 좋고, 따로도 좋다”며 “국가도 유기체인데 기와 혈이 통하면 병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식의 경제부양책은 우려된다”며 “이에 관해 얘기를 많이 드릴 테니 거북하시더라도 들어달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의전상 박 대통령 오른쪽에 여당, 왼쪽에 야당 지도부가 앉아왔던 관례를 상기시키며 “오늘은 자리를 바꿔 앉자”고 제안해 야당 존중의 의지를 밝혔다.

여권에서는 이날 회동을 계기로 그간 냉랭한 기류가 흘렀던 청와대와 국회 간에 순풍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청·야 관계’뿐 아니라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개헌 등을 둘러싸고 ‘청·여 관계’도 매끄럽지는 않았던 만큼, 이날 회동이 여·야·청 간 새로운 소통의 계기가 될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5부 요인,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등과 비공개 환담을 가졌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