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지도부의 ‘압박’ 속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17일부터 국회 상임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직권으로 국회 정상화를 선언한 가운데 정작 새누리당이 상임위 개최를 주저하고 있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 의장이 정기국회 의사일정의 직권 결정이라는 무리수를 쓰면서 국회 정상화를 시작했지만, 새누리당은 이날 상임위를 단 한 곳도 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당수 여당 소속 상임위원장들은 여당 단독의 상임위를 개최하지 않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국회 정상화 선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민생법안 등의 심사는 어려울 전망이다.

문화일보가 17일 전체 상임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이날 중 상임위 전체회의 또는 소회의를 개최하거나 여야 간사 협의 계획을 확정한 상임위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등 여당 소속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위원회도 상임위 회의 개최에 대해 뚜렷한 복안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외통위의 경우는 18일부터 상임위원장과 여야 의원들이 러시아 출장을 떠날 예정이어서 사실상 26일 국회 본회의까지 북한인권법 처리가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주호영 정책위의장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외통위에서 북한인권법을 신속하게 처리해 26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현재 각 상임위엔 각종 민생법안과 결의안, 지난해 예산결산안은 물론, 정부조직법·김영란법·유병언법 등 시급히 다뤄야 할 법안들이 대거 계류 중인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상임위 개최를 주저하는 이유는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를 열 경우 야당과의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당 소속 A 위원장은 “우리 상임위만 튀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면서 “타 상임위 상황을 체크 중”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원내 관계자는 “당 지도부는 단독 국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라며 “군사작전을 하듯 상임위를 열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날도 새누리당은 위·아래 간 호흡이 맞지 않는 장면을 노출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새누리당은 책임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오늘부터 정상화되는 상임위 활동에 적극 참여해 불이 꺼지지 않는 국회가 되게 불철주야 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완구 원내대표는 여당 소속 상임위원장 및 간사단 회동을 열고 조속한 상임위 운영을 촉구했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