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죄한 고노(河野)담화를 대체할 새로운 담화를 내년에 발표하는 방안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최근 고노담화 검증 작업을 벌인 데 이어 새로운 담화 발표를 추진하면서 고노담화를 사실상 폐기,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교도(共同)통신 등에 따르면 자민당은 21일 정책결정기구인 정무조사회 회의를 열고 종전 7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내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다룬 새로운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에 따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정조회장이 이르면 다음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게 요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아베 정부는 지난 6월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를 발표했다가 한국은 물론 미국까지 우려를 표하면서 국제적 비난 여론에 휩싸이자, 결국 담화를 수정하려는 것은 아니라며 수습에 나섰었다. 그러나 아사히(朝日)신문이 최근 80년대 게재했던 일부 관련 기사를 철회한 것을 계기로 삼아 다시 입장을 바꾸는 모양새다. 다카이치 회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국민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정보가 해외에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에 대해)확실하게 부정해 나갈 것”이라면서 “새롭게 조사를 해서 판명된 사실을 근거로 담화를 발표해달라”고 밝혔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이에 대해 “정부는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새로운 담화를 내는 것은 사실상 고노담화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유엔의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지적을 적극 반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참의원은 “(유엔 사무국이 있는)제네바에서 제대로 분명한 정보를 알려야 한다”며 “외무성이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노예’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아사히는 지난 5일 ‘제주도에서 여성들이 강제동원됐다’는 일본인의 증언을 다룬 1982년 기사를 허위로 판단하고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아사히는 “일부 부정확한 보도를 이유로 ‘위안부에 사과할 이유는 없다’고 하는 주장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본 우익세력과 정치권에서는 기사 철회가 위안부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로 활용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