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오사카(大阪)의 밤거리를 밝혀온 명물 간판 ‘글리코 러너’가 16년 만에 ‘은퇴’했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 17일 오사카의 번화가 도톤보리(道頓堀)의 대형 네온사인 글리코 러너 간판이 이날 마지막으로 불을 밝힌 뒤 오후 10시부터 소등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에 불을 끈 간판은 1998년 설치된 ‘5대 러너’로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가을부터는 새로운 ‘6대 러너’가 등장할 예정이다.

운동복을 입고 양팔을 번쩍 들어올린 채 트랙을 질주하고 있는 선수의 모습이 담긴 이 네온사인은 오사카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랑받아왔다.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해왔고, 오사카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인증샷’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변화해 오면서 오사카, 일본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

글리코 러너 네온사인은 오사카에 본사를 둔 식품회사 에자키 글리코(江崎グリコ)가 기업 이념인 ‘맛과 건강’을 홍보하기 위해 1935년 설치했다. 산케이(産經)신문에 따르면 ‘글리코’라고 쓰인 온도계 모양의 탑 상단에 육상 선수의 달리는 모습이 들어가 있었던 첫 번째 네온사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3m의 높이로 단번에 오사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1대 러너’는 등장 8년 만인 1943년, 당시 전쟁으로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정부가 철재 확보를 목적으로 해체하면서 사라지고 만다.

글리코 러너가 다시 돌아온 것은 종전 후인 1955년이었다. 포탄과 비슷한 모양의 포물선 기둥에 달리는 사람의 모습을 크게 배치한 ‘2대 러너’는 네온사인 아래에 설치돼 있는 무대가 특징이었다. 전후 활기를 되찾아가던 오사카의 공연, 신상품 발표회 등이 2대 러너의 발 아래에서 잇따라 열렸다.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1963년 등장한 세 번째 네온사인은 150개의 노즐을 설치해 ‘러너’의 몸에서 분수가 분출되는 듯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12가지 색의 램프 400개가 비추는 최신 기술이 적용됐다. 일본의 경제성장세가 이어졌던 1972년 등장한 네 번째 러너는 휘어진 육상 트랙을 배경으로 삼아 질주하는 느낌을 강조한 생동감있는 디자인이었다. 최근까지 활약했던 다섯 번째 간판에는 오사카성, 쓰텐카쿠(通天閣) 등 오사카의 명물들이 트랙의 배경으로 들어갔다.

올가을 공개될 예정인 6대 러너는 절전기능을 갖춘 발광다이오드(LED) 램프를 장착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사카 시민들 사이에서는 올해 3월 완공돼 오사카의 새 명물로 등장한 일본 최고층 빌딩 ‘아베노 하루카스(あべのハルカス)’가 6대 러너의 배경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