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6월 25일 경북 성주군 가천면 서부농협에서 농협중앙회가 부산힘찬병원과 함께 마련한 ‘농업인 행복버스’의 무상진료를 받은 한 할머니가 물리치료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

“영감보다 낫네. 영감은 허리나 어깨가 아프다고 해도 주물러주지 않아.”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는 또래 할머니 두어 분과 자동 어깨안마기를 두르고 연신 즐거워했다.

지난 6월 25일 경북 성주군 가천면 창천리 603번지 서부농협 2층 강당에 마련된 무료 진료실에는 대개 병원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 대신 쾌활한 웃음과 대화가 넘쳤다.

성주군의 가천면·금수면을 포괄하는 서부농협(조합장 배수동)은 지난달 24일과 25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농업인 행복버스 사업’을 실시했다. ‘농업인 행복버스’는 지역 농협조합원을 대상으로 의료봉사와 장수(영정)사진 찍어주기, 무료법률상담, 평양예술단 문화공연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날 부산힘찬병원의 의사 2명과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20명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진료실에는 본격적인 농사철인데도 281명의 조합원이 찾는 성황을 이뤘다. 1500여 명 조합원 중 65세 이상으로 제한한 무료 의료봉사 대상자 300여 명의 대부분이 참여한 것이다.

오전 9시부터 1층 농협은행 안에 마련된 접수대를 찾기 시작한 할아버지·할머니 농업인들은 농협과 힘찬병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문진표를 작성한 뒤 혈압을 재고 혈당을 체크했다. 이어 건물 밖에 세워둔 이동진료버스에 올라 무릎, 팔다리, 어깨, 허리 등 불편한 곳을 말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본격적인 진료는 2층 강당에서 이뤄졌다. 2층으로 올라가 의사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사이에 좀 전에 찍은 엑스레이 사진이 정용욱 진료부장과 박강희 진료과장의 노트북 컴퓨터로 전송된다. 관절, 척추 분야 전문가들인 두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환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디가, 얼마나 나쁜지를 자세히 알려준 뒤 약을 처방하거나 물리치료를 받도록 했다. 상태가 심각한 경우는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거나 장기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6대의 전기저주파치료기, 적외선열치료기를 갖춘 물리치료실 앞 대기석에는 어깨안마기를 여러 개 준비해 기다리는 동안 이용하도록 하고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어깨안마기를 두르고 신기해하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천면에 산다는 임모(여·58) 씨는 “생각보다 상세히 진료를 해 주더라.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자세히 묻고 사진(엑스레이)도 찍어주고. 왼쪽 무릎이 아픈 지 2년쯤 됐는데 안에 뭐가 생겼다면서 병원에 가서 제거수술을 받으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임 씨는 “쪼그려 앉아 오래 일해서 그런지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다”면서 “열서너 마지기 참외밭 농사를 남편과 둘이서 하니 많이 힘들다”고 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엎드린 자세로 전기저주파치료기를 쬐고 있던 이구현(48·가천면 화죽동) 씨도 “시설은 아무래도 병원만 못한데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주니 진료는 병원보다 낫다”고 만족해했다. 이 씨는 20대 후반에 서울에 올라가 동대문시장에서 신발장사를 하다 허리를 다쳐 2년 전에 귀향했다. 그는 “골반이 틀어져 매일 성주군에 있는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두 명의 의사가 각자 책상을 놓고 따로 진료를 보는 곳에는 각각 10∼20명 정도의 농민들이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년 차 관절 전문의로 3000여 차례 무릎, 어깨, 고관절 수술 경험이 있는 정용욱(44) 진료부장은 70대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오른쪽 발끝이 열이 나고 늘 아프다”고 하자 양말을 벗기고 만져보더니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로 이 할아버지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인대를 다친 건 아닙니다. 오래 지속되지 않으면 아직 병원에 가서 수술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소염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약을 받아 가시고 저쪽 끝으로 가서 물리치료를 받으세요.” 왼쪽 엉치뼈가 아프다는 또 다른 할아버지에게는 “주사와 물리치료를 병행해 2∼3개월 꾸준히 받으면 나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대부분 무릎 관절이나 허리가 안 좋으십니다. 비탈길에서 쪼그려 앉아 오래 일하거나 무거운 것을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특정 부위에 무리가 가는 노동은 과하게 하지만 전반적인 운동이 부족한 것도 원인입니다. 가금씩 몸을 풀어주기만 해도 예방에 큰 도움이 되는데…여기선 미흡한 장비로 간단하게만 진료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습니다. 소염제 치료 말고 정밀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사와 약물, 물리치료를 꾸준히 병행하면 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이 안되거나 시간이 안나니, 병원을 정기적으로 찾기가 어렵죠.”

정 부장은 ‘병원에 꾸준히 다니며 치료하셔야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어르신들이 ‘농번기라 바빠서 겨울에 가겠다’고 한다”면서 “겨울이 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대부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꾹 버티면서 사는 게 현실이어서 이렇게 의료봉사라도 오면 무척 반가워한다”고 말했다.

성주 = 김세동 기자 sdg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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