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구치소 찾은 법관들 7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찾은 임성근(앞줄 왼쪽 첫 번째) 수석부장판사 등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판사들이 서울구치소 현황보고를 듣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대법원이 지역법관제의 대안으로 6∼8년 정도를 한 지역에서 근무하면 의무적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인사 시스템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 제도는 한 지역에서 30년 이상 연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어 법관과 지역 유력 인사들 사이에 유착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대법원의 인식이다.

◆지역법관 절반 이상 전보=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현재 300여 명인 지역법관 중 많게는 3분의 2 정도가 근무 지역을 옮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전국의 지역법관은 308명이고, 이 중 절반 정도는 지난 2004년 지역법관을 신청해 10년째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법관들이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이들은 모두 근무 지역을 옮기게 되며, 나머지 6∼8년 이상 근무자들도 타 지역으로 전보된다. 이렇게 되면 지역법관이 100명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추정이다. 현재 지역법관 비율은 대구고법 산하가 45%로 가장 높고, 대전고법 34%, 부산고법 28%, 광주고법 25%순이다.

특히 지방의 주요 재판부를 구성하고 있는 판사들에 대해서도 전보 인사가 대폭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5억 원의 황제노역 판결로 문제가 된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의 경우, 1·2심 재판장이 모두 광주 지역에서만 근무했던 지역법관이었다.

2004년 공식적으로 지역법관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향토법관’(향판)으로 불리며 한 지역에서만 근무했던 인사들은 해당 지역 법원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포진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역법관을 따로 신청하지 않고도 계속 한 지역에서 근무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정 지역 근무 상한제가 도입되면 대법관을 제외한 모든 판사들에게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 순환근무 도입은 배제= 대법원은 지난 2004년 기존의 향판을 양성화하는 지역법관제를 도입했다. 도입 취지는 법관의 독립성 강화, 잦은 전보 인사에 따른 재판 중단 방지, 법관 생활 안정 도모 등이었다. 하지만 지역법관제의 부작용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이미 한 차례 제도를 개선했다. 지역법관이 원할 경우 타지역에 일정 기간 근무할 수 있게 하고, 지역법관 비율이 높은 지역에는 지역법관이 아닌 판사들을 다수 배치해 편중 현상을 완화시키려는 시도도 했다.

대법원은 이번에 지역법관제도를 전면 손질하면서도 판사들이 희망하는 지역에 상당 기간을 근무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 업무의 특성과 법관의 독립성 측면에서 단기간에 모든 판사를 순환 근무시키는 방안도 문제점이 많다”며 “지역법관의 장점도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개선안에 따르더라도 판사가 연고가 있는 지역에 7∼8년 정도를 근무하고 다른 지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부족한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