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법관(향판)제는 전관예우와 함께 법조계의 고질적인 비리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한 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한 향판들이 내놓은 석연치 않은 판결을 두고 지역 유지나 변호사와의 유착 관계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3월 이른바 ‘일당 5억 원’ 판결로 알려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사건은 향판제의 폐단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7년 허 전 회장은 508억여 원의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하면서 벌금 미납시 1일을 5억 원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 유치를 명했다. 이 판결을 내린 장병우 전 광주지법원장은 광주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85년 광주지법에 부임한 뒤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순천지원에서 일한 것을 빼고 줄곧 광주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2월 1000억 원대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홍하 서남대 이사장에 대해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보석 결정을 내린 사례도 비난의 표적이 됐다. 보석을 결정한 최모 판사는 1999년 광주지법에 발령받은 뒤 14년째 이 지역에서만 근무해 온 향판이었다. 이 이사장의 큰사위 역시 현직 판사로 최 판사와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이자 연수원 동기로 최 판사가 이 이사장을 풀어준 배경에는 이 같은 인연이 작용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1년에는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가 지역 변호사에게 사건을 알선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선 전 부장판사는 광주지법 수석부장 재직 당시 법정관리기업 감사에 자신의 중·고교·대학 동창인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알선했다. 향판이 논란이 된 재판에는 대부분 ‘향검’(해당 지역 출신검사)과 ‘향변’(향판 출신 변호사)이 관련돼 있어 지방 법조계의 토착비리가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김동하 기자 kd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