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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예능국은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종편과 케이블로 인력 유출이 잦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카우트되는 PD들은 대부분 지상파 방송사의 ‘에이스’들이었다. MBC 예능국의 황금기를 책임진 여운혁 임정아 성치경 PD 등을 일찌감치 JTBC로 보낸 MBC PD협회는 지난 2월 ‘무릎팍도사’와 ‘나 혼자 산다’ 등을 연출한 오윤환 PD와 ‘무한도전’의 마건영 PD가 사표를 내자 “예능본부의 핵심 PD 2명이 거대 지상파를 박차고 종편 방송으로 이적을 결심한 것은 MBC에 더 이상 자율성이 사라지고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고 성토했다.

지상파의 위기는 돌려 생각하면 종편과 케이블의 기회다. JTBC에는 MBC 외에도 KBS 출신 예능 PD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종편 예능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히든싱어’는 KBS에 몸담았던 조승욱 PD의 작품이다. ‘1박2일’을 기획한 김시규 PD와 이동희 PD 역시 KBS에 이어 JTBC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CJ E&M에도 지상파 출신 실력파 예능 PD가 즐비하다. KBS 재직 시절 여행을 모토로 삼은 로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박2일’을 정상에 올린 나영석 PD는 여행이라는 테마를 새롭게 변주해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KBS 2TV ‘개그 콘서트’의 산파 역할을 했던 김석현 PD는 코미디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케이블에서 ‘코미디 빅리그’라는 꽃을 피웠다. 이 외에도 KBS 2TV ‘불후의 명곡’을 연출한 고민구 PD와 SBS 출신 신효정 PD 역시 CJ E&M로 둥지를 옮겼다.

이들은 종편과 케이블로 자리를 옮기며 적지 않은 이적료를 받았다. 하지만 돈은 결코 우선순위라 할 수 없다. 지상파에서도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썰전’을 기획한 여운혁 책임프로듀서(CP)는 ‘도전자 정신’을 강조했다. 여운혁 CP는 “도전자는 항상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해야 한다. 지상파와 똑같은 것을 보여서는 기존 시청자들을 끌어올 수 없다. 이미 굳어진 도그마를 깬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그것을 제대로 깨뜨렸을 때 쾌감은 상상 이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편과 케이블의 심의 기준은 좀 더 헐거울 줄 알았다. 그런데 지상파와 똑같더라. 결국은 콘텐츠를 다루는 자세의 차이가 지상파와 종편-케이블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종편과 케이블의 폭넓은 수용 정신은 예능 작가들의 능력도 발현시켰다. MBC ‘하이킥’ 시리즈를 집필했으나 지상파에서는 드라마 작가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송재정 작가는 지난해 tvN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을 집필해 2013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시상식에서 드라마부문 장관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이우정 작가 역시 ‘꽃보다 할배’ 시리즈와 ‘응답하라’ 시리즈를 오가며 예능과 드라마를 동시에 섭렵했다. 이런 이우정 작가의 행보를 보며 방송 관계자들은 딱 두 가지를 말했다. “정말 힘들겠다.” 그리고 “지상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