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종편과 케이블에서 맹활약 중인 이우정 작가, 나영석 PD, 안판석 PD(왼쪽부터).

1979년 영국 밴드 버글스는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발표했다. 공개될 당시만 해도 다소 급진적인 노래였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 버글스는 몰라도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뜻으로 직역되는 이 노래의 제목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다.

이 문구를 국내 방송가에서 활용하자면 ‘종편-케이블이 지상파를 죽이고 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완료형(killed)은 아니지만 현재 진행형(killing)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비디오가 라디오를 넘어서는데 30년이 걸렸지만, 케이블시장은 2006년 tvN의 개국을 기점으로 급성장 중이고, 종합편성채널(종편)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나날이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종편과 케이블로 영입된 출중한 실력의 지상파 출신 인사들은 주류(지상파)에서 비주류(케이블-종편)로 자리를 옮겼다 볼 수 있다. 새로운 시장에 빠르게 뿌리내린 후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그들은 굳이 기존 주류 시장을 파고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주류를 형성하며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Mnet ‘슈퍼스타K’는 한국형 오디션 프로그램을 태동시켰다. 2010년 10월 22일 방송된 ‘슈퍼스타K 2’ 결승전은 전국 시청률 18.1%(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지상파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비지상파 프로그램 역대 최고 기록이다. KBS에서 이적한 나영석 PD와 신원호 PD가 각각 만든 tvN ‘꽃보다 할배’와 ‘응답하라’ 시리즈는 동시간대 방송되는 지상파 프로그램과 어깨를 견줬다.

두 돌을 갓 넘긴 종편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MBN의 집단 토크쇼인 ‘동치미’ ‘아궁이’ ‘황금알’은 3∼5% 시청률을 꾸준히 기록 중이고 JTBC ‘히든싱어’와 ‘썰전’,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지상파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드라마 시장에서도 격차가 줄고 있다. MBC 출신 안판석 PD는 정성주 작가·배우 김희애와 ‘아내의 자격’에 이어 ‘밀회’를 합작해 호평받았다. ‘밀회’의 시청률은 동시간대 방송된 KBS 2TV ‘태양은 가득히’를 넘어섰다. 체감 시청률은 그 이상이다.

특히 낮 시간대는 시청률 역전 현상이 뚜렷하다. 오전 주요 프로그램이 끝난 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상파 평균 시청률은 1% 미만이다. 반면 종편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은 1%를 웃돈다. 저녁 시간에는 지상파를 보지만 낮이 되면 여지없이 채널이 돌아간다. 시청자들이 지상파 외에 볼 것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방증이다.

종편과 케이블은 역사가 짧다. 하지만 자본력을 앞세워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대거 영입한 그들의 맨파워가 결코 지상파에 뒤진다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자체콘텐츠 비율도 높아지면서 채널에 대한 호감도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채널 인지도 면에서 지상파가 가진 기득권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이 기득권마저 빼앗긴다면 더 이상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구분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한 종편 관계자는 “MBC는 11번, KBS는 9번과 7번이라는 상징적 번호를 갖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킬러 콘텐츠를 생산하며 채널의 인지도를 쌓아간다면 종편과 케이블이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자신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