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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논설위원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상품을 ‘상생품목’으로 정할 경우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자체가 시장(市場)에 명령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혹시라도 까불면 마트가 통째로 상생품목이 돼버릴 수 있다.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이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에는 성형 부위별로 연령 기준을 정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국회의원 입맛대로의 입법 과정은 계속 이어진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에는 방송사 사측과 종사자 측이 같은 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라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자꾸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 노조를 통해서 민영 방송사의 사적(私的) 자치권·경영권까지 손보겠다는 뜻이다. 시장경제와 재산권 보호 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자 소위에 참석한 어느 의원은 잘못된 점이 있으면 헌법재판소로 가면 되지 않느냐며 되레 큰소리다.

입법권 남용에만 머물지 않는다. 안전행정부 공무원들에 따르면 요즘엔 정부 고유 권한인 시행령·시행규칙까지 다 국회에 사전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정도다.

국회가 최근 통과시킨 특별감찰관법은 한 마디로 압권이다. 이 법은 원래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제안된 것이다. 그 때문에 반부패 사정(司正) 중추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역할을 넘겨받을 것으로 기대돼 왔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법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회가 그동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온 의도가 무엇인지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애초의 특별감찰관법은 대통령 친인척과 비서실 고위직을 비롯해서 국무총리와 고위 공무원 그리고 국회의원을 감찰 대상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통과된 법 속에는 국회의원이 쏙 빠져 있다. 국회는 건드리지 말라? 국무총리 이하도 동시에 삭제했다지만 새 법은 결국 검찰 무력화와 동시에 청와대를 정조준, 대통령 길들이기에 나서겠다는 흉중이 분명하다.

국회 독주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입법권 남용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근대 민주주의 정체(政體)의 근간을 이루는 삼권분립마저 흔들 기세다. 오죽하면 ‘국회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세상’(현진권·한국재정학회장)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겠는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의회 독재’로 갈 수밖에 없다. 국민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