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국무부 측에 ‘위안부 결의안’을 일본 정부가 준수하도록 독려할 것을 명시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안보와 과거사’ 분리정책을 취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시아 외교 원칙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잇따른 우경화 행보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 협력체제는 물론 한·미·일 삼각동맹에도 커다란 위협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를 제지하고 나설지 주목된다.

16일 미 상원이 하원에 이어 국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지난 2007년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을 일본 정부가 준수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2014 회계연도 통합세출법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킨 것은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18일로 마감시한이 정해졌던 세출법안을 재수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적 조건도 있지만 의원들 사이에서 위안부 결의안 이행 촉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위안부 결의안 이행 촉구는 하원 세출위원회 소속인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스티브 이스라엘(뉴욕) 하원의원의 주도로 이뤄졌다. 이날 혼다 의원은 성명서에서 “세출위원회 선임위원으로 내용이 법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치열하게 싸웠다”고 언급해 논의 과정에서 일부 반대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포괄적 사과를 하고 잔혹하게 희생됐던 여성 수십만 명의 원한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면서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2차 세계대전 역사의 비극을 적절하게 종료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혼다 의원은 일본계 3세지만 그동안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일본 단체들이 선거때마다 혼다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로비를 벌였을 정도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 비판을 가했다. 그는 16일 워싱턴DC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빌딩에서 가진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과의 면담 자리에서 “아베 총리의 행동은 잘못됐고, 일본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독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방미 중인 박 의원은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한·중·일 사이에서 감정이 악화되고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은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와 과거사 분리정책에 현실적 오류가 있다는 견해인 것으로 판단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동북아시아 과거사 갈등과 관련해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시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한 이후 직접적인 비판은 꺼리고 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화를 권고한다”면서 “모든 당사국에 도발적인 행동을 삼갈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 DC의 외교소식통은 “미국 정부 고위층에서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